이 기사는
2024년 05월 14일 18:2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내년 상반기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 개설 소식에 증권가가 들썩인다.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12년 만의 변화다.
넥스트레이드는 현재 정규 거래시간(9시~15시 30분) 전에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을 운영하고 이후 애프터마켓(15시 30분~20시)이 문을 열 예정이다. 운영시간이 지금보다 5시간 30분이 늘어나 주식거래를 하루의 절반인 12시간이나 가능해지는 셈이다.
거래시간이 늘어남에 따른 기대감도 있겠지만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핵심 쟁점인 ‘최선집행의무’ 표준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선집행의무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투자업자가 주어진 시장환경에서 고객의 주문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집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의무화했다. 복수 거래시장에서 주문집행 기준이 된다. 그동안 단일 거래체제였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내년 3월 ATS 출범 이후부터 증권사들은 이를 지켜야한다. ATS를 운영 중인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제각각이라 예측하기도 어렵다. 업계에서는 시장 초기 혼선으로 인해 투자자 민원이 발생할 경우를 우려해 유예기간 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거래소 도입 시기와 맞물려 시행되는 금융투자소득세도 걸림돌이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양도소득에 매기는 세금이다. 국내 투자자 중 대상자는 약 15만명으로 전체의 1% 정도로 추산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ATS 운영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문제는 비중이 작지만 거래대금이 크다는 데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금투세 대상자의 투자금은 최소 150조원에 이른다. 규모가 큰 만큼 이들의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 투자 환경이 악화돼 개미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일각에서 금투세 도입으로 한국증시가 상승 동력을 잃을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정부가 거래 시간을 늘려놓고 세금은 더 걷어가겠다는 속내로 비칠 수도 있다. 거래 시간이 늘어나고 비용을 줄여 투기적 거래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요가 예상처럼 늘어날지도 의문이다. 증권 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개미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거래 시간과 거래량이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목이랑 거래량도 제한적이다. 경쟁매매로 체결되는 거래량은 시장전체 기준 15%, 종목별 30%다.
이뿐만 아니라 관련 종사자들의 근무시간도 부담이다. 이미 증권업계에서는 오전반·오후반으로 팀을 쪼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식거래 시간이 1일 기준 5시간 30분이나 늘어나는 것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해외 기관의 주문 처리도 걱정이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에 열리는 프리마켓에는 미국 기관이, 저녁에 열리는 애프터마켓에는 유럽 기관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매매 관련 조직은 물론 지원부서 퇴근도 덩달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시장의 감시감독 기능도 자칫 저하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1년 선보인 한국ECN증권이 있다. ECN증권은 2001년 12월 영업을 개시했다. 32개 증권사가 256억 원을 공동 출자했다. 거래시간은 오후 4시 반∼9시로 ‘밤에도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불과 3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당시 이정범 ECN증권 대표 얘기를 들어보면 결국 예측 실패가 원인이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예상처럼 수요가 늘지 않았고 시장 활황에도 열등재는 퇴출됐다. 기관투자자가 소극적이었고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한정적 사업영역으로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제도나 주주 지원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시장 상황이나 거래 대상, 시간, 호가 등 많은 게 달라졌지만 우려 지점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예전처럼 금융당국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대체거래소가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게 혼자만의 생각이길 바란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