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성남 기자] 지난해 말 기준 주요 증권사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2022년 말과 비교해 두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는데요. 금융당국의 요구 수준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내달부터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장을 기존 3분류에서 4분류로 재평가하면서 부실사업장 분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충당금 추가 부담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추가로 적립해야 할 충당금이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2일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요 증권사 28개사의 충당금 합계 규모는 4조4403억원으로 나타납니다. 2022년말과 비교하면 113.21%나 늘었습니다.
부동산 관련 충당금 적립 증가율 1위 증권사는 삼성증권입니다. 적립 규모로는 신한투자증권이 1위, 뒤를 이어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증권, 메리츠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이투자증권은 소형사임에도 충당금 규모가 11위 수준입니다. 키움증권의 경우 5700억원 넘는 충당금 적립이 있었지만 부동산 PF 관련이 아닌 영풍제지 미수금 관련이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주요 증권사의 지난해 공격적인 충당금 적립은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불거진 데 따른 것입니다. 금융당국이 내달부터 전국 5000여곳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장에 대한 새로운 사업성 평가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추가 적립이 우려됩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의 국내 부동산 PF 예상 추가 손실 규모는 향후 약 1조1000억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최대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해당 수치는 기존 25개 증권사의 작년말 기준 기적립 대손충당금과 준비금 규모(2조원)을 감안해 산정했습니다.
나이스신평은 특히 브릿지론 관련 손실 우려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전체 브릿지론 사업장에서 약 38~46%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는데요. 이예리 나이스신평 금융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부동산시장 회복 지연으로 기투자 익스포져가 여전히 회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부실 정리 의지에 따라 관련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이스신평은 2023년말 증권업 국내 부동산 PF 익스포져의 중후순위 비중은 42%로, 캐피탈(30%), 저축은행(11%)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며, 높은 중후순위 비중으로 인해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본규모별로 살펴보면 초대형사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추가적립부담이 가장 낮았지만, 대형사와 중소형사는 각각 자기자본의 약 3~6% 규모를 추가 손실로 인식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원은 "대형사와 중소형사가 초대형사 대비 고위험 부동산 PF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분기 호실적 증권사…2분기 '암울'
부동산 PF 관련 우려에도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호실적을 기록한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 부문에서 약진하면서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놨습니다.
1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 기준 1위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으로 368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어 삼성증권 2531억원, 키움증권 2448억원, NH투자증권 2255억원, KB증권 1980억원, 미래에셋증권 1705억원, 메리츠증권 1265억원, 하나증권 899억원, 신한투자증권 757억원, 대신증권 531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브로커리지 영업환경에 대해선 긍정적 의견을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2분기 이후 실적 전망은 부동산 PF 관련 충당금 규모에 따라 엇갈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금융당국이 내달부터 진행하는 PF 사업장별 등급 분류에서 '부실우려' 현장이 되면 추가적인 충당금 적립이 불가피합니다.
금융당국은 내달부터 새로 마련한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를 진행하는데요. 착공 이전 토지매입·인허가, 시공사 보증 등 초기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주는 브릿지론과 시공 단계의 자금을 대출받는 본PF 등만 사업성 평가 대상이었던 기존과 달리 토지담보대출(토담대), 채무보증, 새마을금고도 사업성 평가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사업성 평가 등급도 세분화 합니다. 기존 '양호-보통-악화우려' 3단계에서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4단계로 강화합니다. 우선 금융당국은 전국 5000여곳의 사업장의 부실 우려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는데요. 230조원 규모의 5000여곳 사업장 중 90~95%가 정상 사업장이고, 5~10%는 '유의'나 '부실우려' 사업장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 중 약 2~3% 현장은 만기 연장이 어려워 상각 처리하거나 경공매가 필요한 '부실우려' 사업장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사업장이 많은 만큼 순차적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합니다. 전체의 30%인 1500곳이 내달 진행되는 1차 대상입니다. 9월 2차, 12월 3차 등으로 이어갑니다. 증권업계에선 현재까지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 없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대다수 부실 사업장은 제2금융권으로 집중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은 내부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당국의 결과에 따라 추가 적립 여부 등이 내부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부실 우려가 큰 사업장의 여신을 보유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는데요. 나이스신용평가는 캐피탈사와 저축은행의 추가 적립 필요 충당금 규모가 6조8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최성남 기자 drks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