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구제 후 회수' 방식의 전세사기 특별법이 지난 28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피해자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의 공공 매입 신청 시 HUG 등 공공이 주택도시기금으로 채권을 사들여 피해액을 우선 변제하고 나중에 채권 추심과 매각으로 회수하면 된다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입니다.
하지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날 곧바로 반대 입장을 다시 한 번 표명했습니다. 나아가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하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청약통장 등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을 전세사기 피해자만을 위해 소모성으로 사용하기엔 사회적 합의가 덜 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전세사기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 중심엔 '주택도시기금'이 있습니다. 지난 1981년 7월 20일 설치된 기금입니다. 국민주택기금(NHF)이라는 이름에서 2015년 1월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책 총괄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맡고, HUG가 위탁 운용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주택도시기금 순자산 가운데 확정·실적 상품 등에 배분·운용해 수익성을 높이는 용도로 쓰이 여유자금은 2021년 49조원에서 지난해 18조원으로 확 쪼그라들었습니다. HUG 측에 따르면 사업 자금과 같은 성격인 여유자금이 충분해야 건전성이 담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선 HUG 주택도시금융연구원 차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HUG 역할 토론회'에서 "주택도시기금은 HUG가 보유한 여유자금이 아니라 나중에 돌려줘야 할 빚"이라며 "주택도시기금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도 사용돼야 하느냐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피력했습니다.
국토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 사업자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우선 매수권을 양도받아 피해 주택을 낙찰받고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10년간 시세의 50~70% 수준 임대료로 더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피해자들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강민석 씨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기당한 지옥 같은 곳에서, 외벽이 허물어지고 누수·역류·결로가 있는 집에서 앞으로 10년을 더 살라는 말입니까? 어디 가지도 말고 연애, 결혼, 출산, 직장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요?"
발언이 더해질 때마다 피해자들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전세사기 시민대책 위원회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