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윤석열정부 출범 후 수출입은행이 집행하는 정책금융 지원이
한화(000880)그룹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폴란드 방위산업 계약을 위해 수출입은행의 자본금 한도를 다급하게 늘린 것부터
한화오션(042660) 유동성 공급, 한화에너지·
한화솔루션(009830) 금융지원 등 지난 2년 동안 다방면으로 수은의 정책금융이 투입됐습니다.
한화에어로 폴란드향 계약, 수은 지원 없으면 '난감'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맺은 폴란드향 방산 실행계약은 총 4건입니다. 지난 2022년 8월 폴란드 정부를 상대로 3조2039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등 수출 실행계약, 11월엔 5조476억원 규모의 천무 다연장로켓 수출 1차 실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12월엔 K-9 자주포 등 2차 실행계약(3조4475억원), 올해 4월엔 천무 2차 실행계약(2조2526억원) 등을 체결했죠. 폴란드향 계약 4건의 총 계약금은 13조9516억원입니다.
폴란드 군비청과 방산 계약을 맺은 국내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해
현대로템(064350),
한국항공우주(047810)(KAI) 등 3곳입니다. 현대로템은 지난 2022년 8월 K2전차 공급 계약(4조4992억원)을, KAI는 2022년 9월 FA-50 항공기 공급 계약(4조2081억원)을 체결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2년 전에 맺은 1차 계약입니다.
1차 계약만 놓고 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계약금(8조2515억원)은 현대로템, KAI의 2배 규모입니다. 국내 1위 방산업체답게 폴란드 방산 계약에서도 큰 규모의 딜을 따냈습니다.
지난 4월 17일 강원 철원군 문혜리사격장에서 열린 수도군단 합동 포탄사격훈련에서 K9 자주포 부대가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차 계약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만 체결한 상태이지만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이 없으면 실행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지난해 12월에 맺은 K-9 자주포 2차 계약은 이달까지, 올 4월 천무 계약은 오는 11월까지 정부가 폴란드와 별도의 금융지원 계약을 맺어야 발효됩니다.
금융지원 위해 수은법 개정 '부랴부랴'
무기 수출 등 방산 계약은 정부 간 계약입니다. 큰 규모의 계약인만큼 수출국에서 수입국에 금융지원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내 방산업체 3사가 폴란드와 체결한 1차 계약은 16조9588억원 규모였습니다. 수출입은행은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각각 6조원씩 폴란드에 금융지원을 했습니다. 즉 17조원 수준의 폴란드 방산 계약에서 12조원을 우리 정부가 도운 셈입니다.
수은이 단일 차주에게 융자 가능한 최대한도가 6조원이란 점이 추가 계약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은은 한 차주에게 자기자본의 40%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요. 당시 수은의 자본금 수준은 15조원으로 6조원까지만 폴란드에 금융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차 계약을 맺었지만 금융지원 한도를 넘게 되자 계약 파기 가능성이 제기된 겁니다. 이에 부랴부랴 정부가 나서 한국수출입은행법을 손봤습니다. 지난 2월, 2021년부터 국회에 계류됐던 수은 자본금 한도 증액 관련 개정안을 기획재정위원장이 대안발의해 법정자본금을 25조원으로 증액한 것입니다. 2월 마지막 주, 2년 넘게 계류됐던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그 배경엔 K-9 자주포 2차 계약의 금융지원 데드라인이 이달까지인 점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법정자본금은 서둘러 늘렸지만 아직 기획재정부는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보유한 자본금에서 40%까지 빌려줄 수 있기 때문에 기재부가 빠른 시일 내 자본금을 납입해야 수은이 금융지원에 나설 수 있습니다.
자본금 납입은 LH 주식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원 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업계에선 6월이 K-9 자주포 금융지원 계약 기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폴란드로)출장도 계속 다녀오는 등 금융지원을 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한화 계열사, 수은 정책금융 많이 받아
정부가 한화 돕기에 발벗고 나선 탓에 일각에선 정부가 수은법까지 바꿔가며 한화그룹으로 정책금융을 몰아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수은의 금융지원 없이는 대형 방산 계약이 백지화될 수 있단 우려가 형성됐지만 실제 2차 계약을 체결한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방산 외 다른 산업에서도 한화는 수은의 정책금융을 적극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5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 식구가 됐습니다. 2조원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가 지분 49.3%를 가진 최대주주로 등극했습니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은 지분율이 55.7%에서 28.2%로 낮아지며 2대주주로 내려섰고, 이후 추가 증자에도 참여하지 않아 지분율은 19.5%로 더 낮아졌습니다. 지난 1분기말 현재 한화는 46.3% 지분을 보유 중입니다.
한화오션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각각 6000억원을 2.5%의 금리로 단기차입했습니다. 조선업 특성상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하자 1조2000억원을 단기차입한 것인데요. 국책은행인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차입해 국내 기준금리(3.5%) 수준보다 낮은 저리로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두 국책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한 이유는 과거 대우조선 시절 경영정상화를 위해 강구한 금융지원 방안 때문입니다. 당시 양행은 채권단의 협조를 구해 대출 등 금융지원을 대우조선에게 제공하기로 했는데요. 한화오션으로 탈바꿈한 이후에도 향후 5년간 산은과 수은 각각 1조4500억원의 금융지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당 금융지원의 일환으로 6000억원씩 차입한 것이죠.
2년 전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수출입은행의 한화계열사 금융지원에 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 2022년 8월 수은은 한화에너지와 한화솔루션에 각각 500억원을 만기 3년 조건으로 대출해줬습니다. 대기업에게 저리로 정책자금을 공급해준 것에 대해 질타를 받았는데요. 수은은 한화가 수소회사인 한화임팩트 지분을 모두 매입하기 위한 금융지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100% 지분을 확보해 효율적인 투자 의사결정체계가 필요했다"며 "수소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조단위 방산 계약부터 계열사 유동성 공급, 지분 인수 대금 지원 등 대기업인 한화로 향한 수출입은행의 정책금융 규모는 막대합니다. 하지만 지원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에선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은의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들은 수은이 대기업만 편애한다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의에 수은 관계자는 "수은은 상생금융 프로그램과 수출초보기업 육성 프로그램, 중소기업 금리인하 특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중소중견기업 우대 프로그램을 운영 중으로, 2023년말 기준으로 전체 여신(76조원)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여신이 46% 수준까지 높아졌다"면서 "앞으로도 기업규모별 수출 규모, 비중 등을 감안해 대·중견·중소기업을 균형있게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고 답변했습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수출입은행이 집행하는 정책금융 지원이 유독 한화그룹으로 쏠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수출입은행)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