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서민금융 출연금 규모를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자장사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찔끔찔끔 조정하는 '고무줄 출연요율'에 하한선을 두는 내용입니다.
출연금 2배 이상 늘 수도
5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은행 등 금융사의 기여금·출연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초과 이익에 초과 이득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횡재세' 법안이 논란이 되자 대안으로 내놓는 모양새입니다.
민주당은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의 '서민금융 보완계정'에 출연하는 은행권의 출연요율을 현행의 두 배로 인상하는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병욱 전 의원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한 해당 법안을 22대 정무위 의원들이 이어받겠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상임위원회 구성이 확정되지 않아 시점을 못 박기 어렵지만 김 전 의원이 발의한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도 이어받을 것"이라며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횡재세 신설을 비롯해 기여금이나 출연금을 확대하는 내용을 전반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민금융법에서는 현재 가계대출 잔액의 0.1% 이내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책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게 돼 있지만 시행령에서 이보다 작은 0.03%를 출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에는 법에 하한선으로 0.06%로 명시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지난해 은행 출연금은 1100억원이었는데 법이 바뀌면 22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당초 거론된 횡재세 도입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횡재세 부과를 위한 세제 개편을 위해선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다 이미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또 세금을 물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중 과세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 때문에 은행 출연금과 기부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재원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도 은행 등 금융사 출연금과 기부금을 확대해 서민금융 상품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서금원에 대한 금융사 출연 요율을 올리는 서민금융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7월1일까지 입법 예고한 상태입니다.
개정안은 금융사가 가계대출 금액에 따라 서금원에 출연하는 '공통출연금' 요율을 현행 가계대출액의 0.03%에서 은행은 0.035%, 보험·상호금융·여신전문·저축은행 등은 0.45%로 올려 내년 말까지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융위에 따르면 공통출연 요율 인상과 차등출연 요율 인하에 따라 금융사가 내년 말까지 서금원에 추가로 출연하는 규모는 1039억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책서민금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금융사와 정부, 이용자 등이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금융사 출연요율을 한시적으로 인상한 데 이어 서금원에 대한 정부 재정 추가 지원을 위해 재정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정부 재정 확대 동반해야"
금융권에서는 서민금융 지원 확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상생금융 외에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부분에 부담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금융권은 올 들어 은행권 2조1000억원, 저축은행 등 중소금융권 3000억원, 카드·캐피털업계 2200억원 등의 상생 방안을 시행 중입니다.
은행권은 서금원에 2022~2024년 총 1500억원의 별도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취약층이 위기에 몰린 상황이라 출연요율 조정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이나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 방지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사 출연액은 2021년 2100억원에서 지난해 2700억원으로 늘었지만, 재정 투입은 26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은행권은 횡재세 도입이 무산되더라도 부차적으로 논의되는 상생금융 방안이 우려된다는 분위기 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자수익 일부를 사회 환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는 예단할 수 없지만 합리적 조정 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도 입법기관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16일 미국 뉴욕 IR 행사에서 "일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형태의 횡재세는 은행업이 가지고 있는 공적 기능과 성장 흐름을 차단한다"며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형태의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시장을 왜곡 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임기 만료 1년을 앞둔 상황에서 언제 이동하지 이상하지 않은 시점인데다 상생금융 차원의 은행 부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횡재세 보다는 서민금융 상품에 대한 은행 출연을 유도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의에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2대 국회에서도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압박하고 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ATM기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