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로 첫 도입한 국민연금이 1998년 김대중정부와 2007년 노무현정부 개혁을 거쳐 세 번째 개혁을 앞둔 당면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신연금을 '낸 만큼은 받는' 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모수개혁도 '폰지사기(새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 수익 지급)'로 볼 수밖에 없다며 '기금 운용수익률 6%'를 가정한 신연금을 꺼내들었습니다.
구연금, 신연금. 미래세대를 위한 계정의 이원화라는 확정기여(DC)형 전환 주장이나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근거가 확실한 보고서라기 보단 미약한 형태의 자기주장 브리프(Brief)로만 보이는 게 저만의 생각일까요.
현세대의 연금 부채 부담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지 않고 연령대별로 각각 기금을 조성하자는 취지이나 미래세대의 DC형 전환은 사실상 파격적으로 안정적 운용방식보단 위험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현행 국민연금은 확정급여형(DB)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DB형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액수와 상관없이 40년간 납부하면 소득대체율 40%를 받습니다. DC형은 정해진 보험료를 낸 후 기금수익률에 따라 수급시점에 변동 폭이 생깁니다.
DC형은 기대수익률이 높은 만큼,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미래세대의 특정 연령도 은퇴 시점이 되면 DC형 위험자산을 운용하고 싶을까요.
개인계좌의 DC연금 형태를 보면 통상 젊을 때부터 50세까지 위험자산으로 운용하다 50세부터 리스크를 줄이는 쪽인 DB형 안전자산으로 가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자본시장의 충격 시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은퇴가 가깝거나 은퇴했는데 자본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온다고 할 때 DC형 은퇴 세대는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시장 충격에 의한 수익률 하락은 손에 거머쥐는 돈도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의 충격을 예상한 소위 DC형 '기금 펑크'를 고려해도 장기적으로 기금 운영 수익률이 기대여명계수에 따라 보장될 수 있는 이론적, 실증적 뒷받침의 근거가 우선인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재정 문제만 고민하다 보니 자본시장의 리스크는 고려하지 않은 듯합니다.
실상은 연금액이 유동적인 스웨덴 DC 방식을 거론하고 있지만 국민연금 재정계산 때마다 기대여명계수를 적용한 자동조정장치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기금 운용수익률 가정도 보면 장기재정전망과 당장의 세수 추계도 맞추지 못하는데 DC형 미래세대가 은퇴할 때쯤 보장할 수 있을까요.
특히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변동성을 고려하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낮추고 자산별 최적 투자 비율을 해외 주식·채권 투자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인데 국내 증시 수급의 악재를 우려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그동안 연금개혁 방식을 두고 소득보장론자들과 재정안정론자들 간의 논쟁은 22대 국회에서 끝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17년 전 마지막 개혁 이후 시민 대표단 다수가 선택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사실상 '더 내고 더 받는' 안인데 여전히 공회전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규하 정책 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