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최근 유통업계의 최대 화두는 해외 직접구매(직구)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의 거센 공습입니다. C커머스 기업들은 공산품을 필두로 압도적인 물량과 초저가 마케팅을 내세우며 우리 유통 시장을 사실상 초토화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사실 온라인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쇼핑을 즐기는 직구 소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중국 업체들의 습격이 사실상 국내 제도의 제재 없이 공정하지 못한 경쟁 체제 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초저가 공세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나거나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 등을 상습적으로 판매하고 있어, 국내 직구 시장을 넘어 유통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직구 시장 매년 급성장…중국 편중 가속화
해외 직구는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생활 저변에 깊숙이 침투한지 오래입니다. 10일 통계청의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구 거래액은 6조7657억원으로 2022년(5조3240억원) 대비 26.9%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직구 거래액은 불과 지난 2016년만 해도 1조9079억원으로 2조원에 미치지 못했는데요. 이후 △2017년 2조2435억원 △2018년 2조9717억원 △2019년 3조6360억원 △2020년 4조1094억원 △2021년 5조1152억원 등 매년 앞자리 수가 바뀔 정도의 급성장세를 보이는 추세입니다. 특히 올해의 경우 1분기까지 1년 전 대비 9.4% 증가한 1조6476억원으로 파악됐는데요.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사상 최초로 연간 7조원마저 넘길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인포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그간 직구 시장은 소수의 숙련된 수요층이 활용하는 틈새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직구의 경우 일반적 채널을 통한 판매 제품보다 구매비, 운송비 및 부대 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고 제품 선택의 폭도 더 광범위하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점차 메인 쇼핑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직구 거래 시장의 포트폴리오가 점차 중국으로 편중되는 점은 위험 신호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직구 거래액은 3조2873억원으로 전년(1조4858억원) 대비 121.2% 폭증했습니다. 반면 오랜 시간 1위를 차지했던 미국은 지난해 1조8574억원으로 전년(2조46억원)보다 7.3% 감소하며 중국에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또 작년 유럽 지역 직구 거래액도 8764억원으로 1년 새 22.9% 급감했는데요.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직구의 경우 객단가가 전반적으로 높은 반면 중국은 워낙 저렴한 제품이 많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며 "경기 불황 및 저성장이 본격화로 소비자들의 소득은 실질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이다. 중국 직구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서 교수는 "다만 수치상 미국 직구 시장의 규모가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반적인 직구 시장의 파이는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상대적 비중이 중국은 커지고 미국은 낮아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기업 모두에게 피해…헛다리 짚는 정부
중국 직구 폭격은 우리 소비자, 기업, 정부 등 전방위에 걸쳐 상당한 부담을 가하는 실정입니다. 먼저 소비자들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중국 직구 상품들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알리, 테무 등 플랫폼에서는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가품들이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탓입니다. 여기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물, 전문의 처방 없이 판매돼서는 안 되는 정체불명의 의약품 등까지 여과 없이 팔리고 있는데요.
중국 직구 업체들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상품 모니터링 및 판매업자 제재 조치 강화 등을 내세우며 이들 품목의 판매를 근절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워낙 많은 물량이 쏟아지는 탓에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달 말 알리, 테무, 쉬인 등 중국 직구 제품 93개를 대상으로 안전성 검사를 한 결과 43%에 달하는 40개 제품에서 최대 428배의 유해 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특히 이번 조사는 어린이용 완구, 보행기, 학용품 등을 대상으로 이뤄진 만큼 어린 자녀층을 둔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기업들 역시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한 주요인이기도 한데요. 같은 공산품이라 해도 알리와 테무에서는 국내 업체와 비교해 가격에서 '0' 하나가 빠지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중국 생산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배송까지 진행해 중간 마진을 없앤 것이 이 같은 초저가 공세의 원동력이죠.
여기에 국내 업체들이 불공정한 경쟁 구도에 놓인 점도 중국 직구 폭격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은 각종 정부 규제를 받지만 중국 업체들은 관세, 부가세 등 규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일종의 역차별인 셈이죠.
정부 역시 이 같은 논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시류를 읽지 못하고 정확한 진단 없이 잘못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죠. 정부가 지난달 16일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제품의 국내 반입 차단을 위해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 금지 정책을 내놨다가 불과 사흘 만에 철회한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과다한 구매 선택권 제한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고, 이에 정치권까지 비판 수위를 한껏 높였는데요. 당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 직구 금지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 발언했고, 나경원 국민의힘 당선인도 "졸속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해외 직구 금지 조치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 정책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여당 중진으로서의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설전을 벌인 바 있습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구 규제 방안은 정부가 거시적 측면에서의 초국경 소비에 대한 이해 없이 직구 문제를 단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게다가 직구 제품이 중국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제품 신뢰도가 높은 미국, 유럽, 일본 등지의 직구 길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었던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중국 상품들을 이용하게 되면서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극소수의 강자들을 제외하면 이커머스 시장에서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이 같은 근본적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중장기적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마약 탐지견이 직구 물품들의 마약 탐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