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데이터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를 저장·관리하고 IT 인프라를 보관하는 시설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까닭인데요. 문제는 전력입니다. 전력 수요 예측과 공급 계획의 실패로 기 추진되던 대형 건설 프로젝트들마저 차질을 빚고 있는 형국인데 과연 우리는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요? 최근 발생한 '전력대란'의 근본적 이유를 짚어보며 '예측 가능한 전력공급 계획'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해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앞서 전력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시설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게 현재의 전력 대란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짚었는데요<
(예고된 전력대란)②데이터센터 전력 지속 증가…예고된 대란>. 이 문제만 풀면 전력 대란이 해결될까요? 아쉽게도 상황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전력 대란은 수도권이 가장 치열하게 겪고 있긴 하지만,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성공 여부가 '전력망 확충'에 달려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부도 이 점을 인지하고 지난해 10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추진했는데요. 하지만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 계류돼 있던 법안은 21대 국회 종료로 결국 자동 폐기됐습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는 2038년 국내 최대 전력수요는 129.3GW(기가와트)로 전망됐습니다. 적정예비율 22%를 고려하면 2038년까지 필요한 설비는 157.8GW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에 산업통산자원부 11차 전기본을 통해 원전 APR1400 노형 3기, 재생에너지 추가 확보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로 송전선로 추가 확보가 절실한데요. 현재 원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증가속도를 전력망 확충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전력(015760)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은 2020년 10만5762MW(메가와트)에서 작년 16만4739MW로 55.8%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송전선은 같은 기간 2.7% 확충되는 데 그쳤습니다.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의 반발로 송전선 사업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당초 2012년 6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150개월 지연돼 올해 12월 준공 예정입니다.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2019년 12월 예정이었으나 66개월 지연된 2025년 6월 준공될 전망입니다. 345kV 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는 2021년 6월에서 90개월 지연된 2028년 12월 준공이 예정돼 있습니다.
홍천군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강원 홍천군에서 송전탑 반대 200리 차량 대행진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홍천군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등이 집중되는 곳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입니다. 이곳의 전기 수요가 날로 커지는 형국인데요. 2038년 수도권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만 신형 원전 15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송배전망 상태로는 전력 부족으로 인한 전력 대란이 불가피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추진했습니다. 전력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인허가 규제 완화,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 지원 및 보상책이 포함된 법안입니다. 국가전력망 확충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전력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 갈등을 중재하고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가 인허가 절차를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통과가 무산됐습니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11차 전기본 실무안 발표회에서 총괄위원장을 맡은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해결할지에 달려 있다"며 "그동안 누적된 송전망 문제가 크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니 빨리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한국전력이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부담인데요. 한국전력의 작년 매출은 연결 기준 전년(71조2578억원) 대비 23.80% 증가한 88조2194억원입니다. 영업손실은 4조5416억원으로 3년째 적자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송전망을 구축하는 데는 수조원대의 송전선로 건설비용이 발생합니다. 과거 고덕에서 서안성까지 23km 거리 송전망 구축 당시 건실비용만 약 4000억원이 투입됐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송전선로 예상 구간인 태안에서 용인까지 약 5배의 거리입니다. 고덕-서안성 구간 송전망 준공에만 10년이 걸렸는데 이보다 긴 태안-용인 구간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일정에 맞춰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송전선.(사진=뉴시스)
다만 돈 문제보다는 여론이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히는 상황인데요. 문영환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건설 자체가 오래 걸리는 부분이 아니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문제나 지역 주민 갈등이 원인이다"며 "그런 면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나 지역 주민이 통과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문 교수는 "수도권에서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데 발전소와 떨어져 있으니 송전선이 당연히 필요한데 이미 송전선이 포화상태"라며 "야외에 노출된 송전선이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신뢰도를 위해서 송전 용량이 거의 2배 가량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학계도 신재생에너지의 생산량이 날씨의 영향을 받아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를 흘려 보내는 송전선 예비율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발전 생산량이 충분하지만 이를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서울, 수도권으로 흘려 보내는 송전선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발전소 건설이 이뤄지더라도 충분한 송전선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력 대란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현 상황을 두고, 학계 관계자는 "답이 없는 상태"라고 탄식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전력대란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협상을 통한 양보를 이끌어내는 정공법만이 복잡하게 꼬인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공은 22대 국회에 달렸습니다.
안산 시화호에 설치돼 345kV 신시흥 영흥 송전선로 철탑.(사진=안산시)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