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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맹목적 한미일 안보협력론이 곤란한 이유
입력 : 2024-06-24 오전 6:00:00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국의 오래된 동아시아 지역 전략의 하나다. 냉전시대엔 소련 봉쇄를 위해, 지금은 중국 견제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필요성이 강조되는 점도 유사하다. 강대국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사실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한반도와 그 주변은 하나의 전장(theater)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오랜 외교적 숙원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바 있다.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일 3국이 거의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다차원적 협력을 심화시켜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위험하고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국가가 중국임을 적시함으로써 중국이 그 대상이란 것도 숨기지 않았다.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그 당위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핵 위협,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연합훈련도 빈번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해서는 맹목적 지지가 곤란한 이유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쟁점이 있다.
 
첫째,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안보 아키텍쳐의 성공 가능성 문제다.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 안보 아키텍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동맹으로 구축, 운영되어 왔다. 유럽에서 나토와 같은 집단적, 블록화되어 있는 안보구조와 다르다는 점에서 바큇살(hub & spoke) 체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역내 미중 세력균형의 변화 흐름에 직면하면서 미국은 다자주의적 안보네트워킹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쿼드(QUAD), 오커스(AUKUS), 그리고 한미일 3각 협력이 그런 사례들이다. 패권 하강기에 직면한 미국이 동맹과 우방국을 다층적으로 엮어 가면서 격자형(lattice-like) 구조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전장으로 상정하고 동맹과 우방국의 국방역량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려는 미 국방부의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구상도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다. 심지어 혹자는 아시아판 나토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 이런 다자적, 집단 안보 시스템을 원용하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안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그런데 광활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유럽과 같이 안보불가분성이라는 운명 공동 인식이 생겨나기 쉽지 않다.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관점도 편차가 심하다. 즉, 중국이 숙명적인 적(enemy)인지, 봉쇄, 견제해야 할 위협(threat)인지, 아니면 단지 관리해 나가야 할 도전(challenge)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인도태평양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 분명치 않다면, 집단 공약에 묶여서 얻는 이익과 지불해야 할 대가 사이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트럼프 현상과 워싱턴 발 불확실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현상은 기존 워싱턴 주류의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에 대한 염증이 그 배경 중의 하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국경은 방어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은 방어해 왔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그 지지자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식 세계관에서는 최대한의 양자적 압박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뿐 국제레짐이나 다자협력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적대국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거래주의적, 일방적 대외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의 등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네트워크 전략과 부조화를 보일 수밖에 없다. 공공재 제공 역할은 방기하고 헌신 없는 강대국이 우방에 충성만을 강조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이 트럼프 현상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만 하더라도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외치면서도 ‘중산층을 위한 외교’(diplomacy for middle class)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즉, 갈수록 여유를 잃어가는 강대국이 얼마나 자신이 만든 네트워크에 우방국을 포섭할 수 있는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득실 문제가 있다. 북핵 위협과 중국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우방국과 연대하는 것은 분명히 이점이 있다. 그러나 북핵 위협 대응에서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협력이 주는 추가적 이익은 얼마나 사활적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정학적 중간국인 한국이 부상하는 강대국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일방적으로 편승(bandwagoning)하는 방안은 중국의 호의에만 의존하는 불안한 전략이고, 반대로 견제(balancing)에만 몰두하는 정책은 인접 강국을 적대시하는 무모한 방책이다. 한미일 협력을 포기하는 편승전략도, 한미일 협력을 맹목화하는 밸런싱 전략도 이런 점에서 모두 적절치 않다. 따라서 미중 전략경쟁의 압력속에서도 우리 외교의 좌표를 신중하게 설정해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역할과 성격을 고민해야 한다.
 
즉,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함에 있어 그 수위와 방식에 유의하면서 노골적인 중국 봉쇄의 성격으로 진전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한미일 협력과 아울러 한중일 대화도 균형있게 추구함으로써 가능한 한 진영대결 구도를 희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냉전 흐름과 북중러 밀착을 거론하며 한미일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하다. 북러 밀착, 북중 연대가 강화되고 있지만, 다분히 양자적 접근이지 삼각협력의 완성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북중 관계는 정치적, 경제적 차원으로 아직 군사적 차원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자칫 북중러 연대의 심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한미일 연대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안 되지만 맹목적인 한미일 안보협력론에 빠지지 않는 균형과 절제의 감각이 필요한 시대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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