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최근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부정적 뉴스만큼이나 1분기 실적이 부진해 주가도 약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해마다 가격을 인상하면서 주가를 높였던 만큼 하락 조정을 겪고 있는 지금이 매수 기회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여력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과연 명품은 여기에서 예외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지난주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에 속해 있는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디올은 ‘8만원짜리 백’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지난 18일 외신들이 이탈리아 검찰이 노동력을 착취해 제조원가를 낮춘 업체를 10년간 수사해 디올 가방을 만드는 하청업체 4곳을 적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인 등 불법 이민자를 고용, 쪽잠을 재우며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는 등 노동력을 착취해 원가 53유로(약 8만원)에 가방을 디올에 납품했다는 것입니다. 디올은 이 가방을 2600유로(약 385만원)에 판매한 사실이 알려져 체면을 구겼습니다.
며칠 후엔 LVMH의 또 다른 가족 태그호이어가 해킹 공격을 받아 2900여건의 한국 고객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홈페이지를 새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고객 정보가 털렸는데 그 사실도 몰랐다가 지난해 해커의 협박을 받고서야 신고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개인정보위원회는 태그호이어에 1억2000만원의 과징금과 780만원 과태료를 처분했습니다.
이런 뉴스에 유독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이 더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LVMH의 실적과 주가도 약세이다 보니 LVMH 주식을 보유 중인 투자자들만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판매가 인상에도 매출 감소
프랑스 파리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LVMH는 지난해 말 733.60유로에서 올 3월14일 872.80유로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713.60유로로 밀려 작년 말 주가보다 낮은 상태입니다.
LVMH의 주가 하락은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LVMH는 지난 1분기 207억유로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시장의 예상(211억유로)를 밑돈 성적이었고 지난해 1분기(210억유로)에서도 감소한 결과입니다. 특히 LVMH의 핵심사업이라 할 수 있는 패션 및 가방 부문이 107억유로에서 105억유로로 역성장한 것이 뼈아팠습니다. 시계와 쥬얼리 부문 매출도 2% 감소했습니다.
LVMH의 주요 브랜드들이 연초에 판매가를 인상했는데도 매출이 감소했단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1월엔 디올이 쥬얼리 가격을 10%대 인상했고 티파니도 5% 정도 올렸습니다. 루이비통은 2월에 가방 가격을 5%대 인상했습니다. 판매가 인상에도 매출액이 감소한 것은 그만큼 덜 팔렸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특수 리테일(selective retailing) 부문 매출이 11% 증가하면서 전체 매출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는 북미와 유럽, 중동지역에서 세포라(Sephora) 점유율이 확대된 덕분입니다. 세포라는 화장품 편집숍으로 최근 한국에서는 철수를 결정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LVMH의 실적이 주춤하면서 물가 상승에 따른 구매력 감소가 LVMH의 주가도 끌어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릅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올 상반기에도 판매가를 올렸지만 하반기 추가 인상을 예고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년이면 또 가격을 올릴 확률이 높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지난 5년간 이렇게 끌어올린 가격 인상률이 평균 33%에 달합니다. 루이비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명품 브랜드 샤넬만 해도 지난해 매출이 16% 성장했는데 가격 인상분이 매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에도 명품들은 이렇게 가격을 계속 올린 탓에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한계치에 도달했을 거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도 명품업체들이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렸다고 지적합니다. 바클레이스 유럽 명품 리서치 책임자인 캐롤 마조는 격 인상 때문에 단기적으로 브랜드의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지난 1월 “가격을 올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제품이 가격 인상을 정당화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판매가를 올리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발언입니다.
중국인 구매력 아직 끄떡없어
이와 관련해 LVMH의 지역별 매출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LVMH가 공개한 1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선 매출이 2%씩 성장했으나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아시아 시장에서는 역성장하면서 전체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아시아는 일본을 제외한 시장으로 당연히 중국 매출이 절대적입니다. 일본에선 매출이 32%나 급성장했습니다. 얼핏 보면 중국 경제의 부진에 따른 중국인들의 구매력 감소와 일본 경제의 부흥에서 비롯된 매출 성장의 엇갈린 결과로 읽힙니다.
하지만 내막은 다릅니다. LVMH의 지역별 매출 자료는 매출 발생지역을 기준으로 합니다. 즉 일본 매출이 급증한 것은 엔화가 역사적인 수준으로 약세를 기록 중인 것에 따른 영향입니다. 즉 엔저가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일본에 온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LVMH의 명품을 구매한 결과 일본지역 매출이 증가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상당했습니다. 결과적으론 중국 때문에 아시아 지역 매출은 감소했지만, 중국인에 의한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중국의 실질 구매력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LVMH의 1분기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LVMH 주가는 연말 연초에 상승하고 연중엔 조정하면서 장기간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올해 1월 하순에도 크게 올랐고 작년도 1월에 상승했습니다. 이는 명품들이 연초에 주요 상품 판매가격을 인상하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루이비통 등이 최근 일본과 호주에서 판매가를 올려 국내 소비자들이 구매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만약 지금의 주가 조정이 예전처럼 연말 연초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지금은 매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음달에는 LVMH의 고향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립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하반기 실적은 소폭 개선될 수 있을 전망입니다. 현재 LVMH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 20배 초반까지 내려와 밸류에이션 부담은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LVMH그룹의 명품 브랜드 베를루티(Berluti)는 2024 파리올림픽과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프랑스 대표선수단이 입을 의상을 제작한다. (사진=LVMH)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