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최저임금 인상률 1.7%는 지난 2021년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2021년에 코로나19 영향이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2.6%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이 아닌 실질임금 삭감이 됐다.”
내년 최저임금이 최저임금제 도입 37년 만에 1만원을 넘기며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노동계는 사실상의 임금 삭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공익위원들의 심의촉진구간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심의촉진구간은 최임위에서 노사 협상이 어려울 때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인상률의 상·하한 범위를 말합니다. 노동계는 공익위원들이 정권 기조에 따라 최저임금 범위를 산정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12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뒤쪽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은 10030원 결정된 표결결과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12일 최임위에서 공익위원들의 심의촉진구간 제시에 항의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노동계에서 처음 나온 지 10년이고, 19대 대선에서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세운 지도 7년이 지났다”며 “그 사이 물가는 곱절로 뛰었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변경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2년간 물가폭등기에는 최저임금이 물가인상폭보다 적게 오르면서 또 실질임금이 하락했다”며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이미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5월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물가 수준을 반영한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71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377만5000원)보다 6만4000원(1.7%) 내렸습니다. 월평균 명목임금이 5만3000원(1.3%) 올랐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3.0% 올랐습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실질임금은 2022년(-0.2%)과 2023년(-1.1%) 연속으로 감소했습니다.
올해도 ‘심의촉진구간’ 형평성 논란
민주노총은 또 “노사가 공방을 벌이다 마침내는 공익위원이 정부의 의지를 실현하는 현재 최임위 논의 구조에서는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공익위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제시안이 나올 때까지 양측에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다 종국엔 자신들이 만든 근거 없는 산출식으로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했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노총도 내년도 최저임금이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일부 언론 등에서 1만원 돌파가 마치 엄청난 것인 양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며 “하지만 1.7%라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으로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말했습니다.
12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노총은 “4차 수정안까지 노사 간 격차는 9.1%였는데, 이때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이 5차 수정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하라는 압박을 가했다”며 “이에 노사가 공익위원의 역할을 촉구하며 심의촉진구간 제시를 요구해 나온 구간이 1.4~4.4% 인상으로, 이 구간 자체가 이미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민주노총은 4.4% 이하를 제출하는 것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한국노총은 그래도 최저임금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심정에서 이 구간의 중간인 2.9%보다도 낮은, 물가인상률 예상치만큼인 2.6% 인상안을 제시했다”며 “반면 사용자 측이 1.7% 인상을 제시했고, 공익위원 다수가 사용자 편에 서면서 노동자위원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농락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습니다.
한국노총은 “편파적 공익위원 구도에서 낮은 인상률로 결정된 최저임금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하반기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과 업종별 차별적용 완전 철폐를 위한 입법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역대급으로 낮은 최저임금 인상 결과에 실망했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 수준이 ‘용산 청부 수준’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심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취임 2주년 기자회견과 민생 방문 등에서 물가 상승의 원인을 인건비 때문이라고 말하며 임금 인상 통제를 노골적으로 주문했다”며 “최임위 공익위원들이 윤석열정부의 임금 삭감 기조를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