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이지유 기자] 장마철이 장기화하면서 다소 진정세를 보였던 밥상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전국 곳곳에서 농작물이 대거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하면서, 채소 및 과일 등 농산물 가격 급등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계절적 요인으로 채소류 가격이 오르는 만큼 지나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올 여름의 경우 평년 대비 비가 많이 내릴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침수 피해 사례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장마 직후에는 본격적인 폭염까지 기다리고 있어 밥상 물가가 잡히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축구장 1만5000개 규모 농작물 면적 침수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집중호우로 이달 16일 기준 전국 농작물 면적 1만756㏊(헥타르·1㏊=1만㎡)가 침수됐습니다. 이는 축구장 1만5000개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침수 피해로 진흙이 차 있는 충북 영동군의 한 과수원 모습. (사진=뉴시스)
이 같은 수해로 주요 채소 가격은 급등세를 보이는 모습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 적상추 소매가격은 100g에 1996원으로 6일 전인 11일(1233원) 대비 무려 61.88% 폭등했습니다. 또 이는 1개월 전 893원보다 123.52% 급등한 수치입니다.
상추의 경우 통상적으로 여름철에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충남 논산, 전북 익산 등 주요 산지의 침수 피해로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더 급등했습니다.
아울러 같은 날 깻잎은 100g에 2344원으로 6일 전(2078원)보다 12.8% 올랐습니다. 또 한 달 전 2122원 보다 10.46% 상승했는데요. 깻잎은 주요 산지인 충남 금산의 폭우 피해가 커지며 공급량이 줄었습니다. 상추, 깻잎의 경우 재파종 이후 수확이 이뤄지기까지 1개월가량 소요돼 당분간 가격 오름세가 지속될 전망입니다.
배추 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습니다. 배추 소매가격은 1포기당 4846원으로 이달 11일(4608원)보다 5.16%, 1개월 전(3416원) 대비 41.86% 상승했습니다. 배추의 경우 호우 피해보다는 여름철 재배면적 감소에 따른 여파가 더 컸습니다.
(인포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지나친 경계 우려해야 한다는 정부…추후 물가 위협 요인 산적
이번 호우로 주요 채소의 출하량 감소가 이어지면서 농식품부 역시 공급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인데요. 다만 농식품부는 여름 시기에 채소류 가격 진폭이 커지는 계절적 특성이 있는 만큼, 지나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경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이번 집중호우가 끝난다 해도 추후 물가를 위협하는 요인이 많다는 점입니다. 내달부터는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여름 태풍까지 더해질 경우 농작물 생육환경의 전반적 악화가 불가피한 까닭이죠. 여기에 여름 휴가철 단기 먹거리 수요가 폭증하는 점도 변수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84(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 대비 2.4% 오르며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만. 당시에도 농·축·수산물 물가는 6.5% 증가해 전체 상승세를 주도한 상태였는데요.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로 급등한 농산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지표에 반영된다면, 당장 이달부터 소비자물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장 서민들이 채소부터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장바구니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겠지만, 장마가 그친다면 물가는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정부는 사전에 물량을 준비하거나 비 피해를 줄이는 대책을 토대로 물가 잡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기후가 아열대화하고 있고, 이에 따른 농축수산가의 피해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기상 이변에 대비가 안 돼 있다. 때문에 이상 기후 이슈가 터질 때마다 농산물 가격의 진폭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확산하면 농산물의 도·소매가격 급등 여파도 장기간 이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가공식품 및 외식 등 밥상 물가 역시 줄줄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지나친 우려를 경계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과는 달리, 이미 주요 채소류의 출하량 감소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육안으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낙관주의보다는 선제적 수급 안정 방안 마련이 더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상추 등 채소류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이지유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