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부모의 자녀 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게 됩니다. 설사 부부가 이혼한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중 한쪽이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다른 한쪽은 양육비를 분담해야 하고, 과거의 양육비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8일 대법원은 과거 양육비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자녀가 성년이 됨으로써 부모의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는 전원합의체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수의견 7인, 별개의견 1인, 반대의견 5인으로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모양새입니다.
종전 대법원 판례는 양육의무가 종료된 후에도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양육비에 관한 권리가 구체적 청구권으로 성립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봤는데요.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기본적으로 친족관계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추상적인 법적 지위이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이 아니라고 봤던 겁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5월22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에 위치한 업무 시설을 공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청구인은 이혼 후 약 32년이 지난 2016년경 상대방에 대해 1974년경부터 자녀가 성년이 된 1993년경까지 자녀를 단독으로 양육하면서 지출한 과거 양육비의 분담을 구하는 심판을 청구했는데요. 1심은 청구인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이면서 상대방의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자녀가 성년이 된 1993년경으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2016년경 청구가 제기되었으므로, 청구인의 상대방에 대한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는 이유로 1심을 깨고 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했는데요. 이에 대해 청구인은 기존 판례 법리를 주장하면서 재항고한 겁니다.
대법원은 2심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봤는데요.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에는, △구체적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양육비 청구권의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단순히 금전지급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것보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족법상 신분에 의해 양육의무 이행을 구하는 권리의 성질을 주로 가지는 점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 과거 양육비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는 것은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권리가 그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성년이 되고 부모의 양육의무가 종료되면, △자녀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의 내용과 범위를 당사자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도록 한 것은, 자녀의 복리나 부부간 양육비 부담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함이지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가 재산적 권리임을 부정하려는 취지가 아닌 점 △자녀가 성년에 이르면 부부 공동의 자녀 양육의무는 종료하므로 부부 사이에는 과거에 지출한 비용을 서로 정산하는 관계만 남게 되는 점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는 구체적 금액이 확정되지 않아도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 되는 점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도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권리행사를 한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지위에 서게 되는 부조리가 발생하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성년이 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결정한 겁니다.
대법관 5인의 반대의견은 종전 판례가 타당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인데요. 과거 양육비 청구권의 법적 성질 등이 자녀가 성년이 됐다는 사정만으로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복리와 소멸시효 제도 사이의 균형을 어느 지점에서 맞출 것인지에 대해 견해가 갈린 것입니다.
소멸시효 제도는 권리를 가지는 사람이 이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되면 그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제도인데요. 보통 △정당한 권리에 부합하는 사실 상태가 생겨나고 존재하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권리자는 그 권리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 △일정한 사실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를 기초로 여러 새로운 권리관계가 형성되므로 오랜 기간 계속된 것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이 제도의 필요성으로 설명됩니다.
소멸시효는 사회의 법적 안정성과 상대방 법적 지위의 불안을 해소하는 측면에서 필요한 제도인 겁니다. 법원이 법에 규정된 제도를 법률적으로 해석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해 판결하는 것은 사회에 꼭 필요한 법원의 기능인데요. 기존 판례와 같이 사실상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영구적인 권리를 창설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상대방 보호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결정에 따라 아직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지 못한 권리자들은 신속하게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양육비의 내용은 △양육자가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위 △소요된 비용 △소요된 비용이 통상적인 것인지 여부 △상대방의 부양의무 인식 여부와 그 시기 △당사자들의 재산 상황이나 경제적 능력 △부담의 형평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분담의 범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과거 양육비가 정해지는 과정에는 많은 요소가 고려되므로 입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는데요. 꾸준히 많은 법조인이 배출되면서 변호사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됐고,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서 법률전문가의 조력에 따라 적절하게 권리를 행사해야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