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독일 정상회담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한 정상회담에서 "독일의 유엔사령부 가입 신청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 문제가, 뜻밖에도 나토 정상회의 계기로 미국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겁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미국은 2019년에 문재인정부에 알리지도 않고 유엔사에 독일군 연락장교를 파견받으려다 한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독일 유엔사 가입, 문재인정부는 '주권침해' 우려 반대
당시 청와대는 주권 문제 즉, 우리 승인 없이 타국 군인이 국내로 들어온다는 점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해 이를 극력 반대했습니다.(관련 기사:
[단독] 美, 한국 몰래 유엔사에 독일장교 파견 시도했다) 전작권이 전환돼 한국군 대장이 주한미군을 지휘하게 되더라도,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 계속해서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게 되면 전작권 전환 효과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런데 왜 유엔사 가입 같은 중대 사안을 유엔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결정하는 것일까요? 1950년 북한의 남침 직후인 7월 7일에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이 지역에서 무력 공격을 격퇴하고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하도록 유엔 제 회원국들에 권고한다. 군사력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미국 주도의 통합사령부에 병력과 기타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며, 이 모든 병력의 군사령관을 임명할 것을 미국에 요청한다."
유엔사가 유엔이 조직한 상비군이 아니라 유엔이 미국에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 조직을 요청해 창설한 군대라는 얘깁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유엔 참전국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남한에 주둔한 미군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필수 인력만 남고 모두 철수하면서, 주한미군 사령부와 유엔사는 사실상 한 몸이었습니다.
2014년 미국 합참은 유엔사 '재활성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당시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이후 존치하고 미래연합사로 개편 결정)에 따른 유엔사령관의 권한과 임무 불일치를 해소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사는 근무자를 3배 이상 늘렸고, 주한미군이 겸임하던 유엔사 부사령관도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3성 장군에게 맡기는 등 '다국적 군사기구'로 강화하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2019년 독일의 유엔사 가입추진도 이와 연동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당시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던 겁니다.
미국, 한국전 때 유엔 회원국도 전력제공국도 아니었던 독일·일본 가입 길 열어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또 하나의 사안이 일본의 유엔사 가입 문제입니다. 2018년 6월 미국 합참은 '유엔사 관련 약정 및 전략지침'을 개정합니다. 유엔사 회원국, 즉 전력제공국의 정의를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해 유엔사에 군사적·비군사적 기여를 하였거나 할 국가'로 확대한 겁니다. 이로써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와 달리 당시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고, 한국전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은 국가들, 즉 독일과 일본 같은 나라들도 유엔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앞서 그해 1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외교장관의 제안에 따라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반도 안보 및 안정에 대한 외교장관 회의'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사령부 전력제공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일본도 초청받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참석한 겁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강경화 외교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미국 합참의 지침변경과 밴쿠버 회의에 일본 외무상 참석 등을 계기로 문재인정부가 2018년 당시에 바로 일본의 유엔사 가입에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습니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적극 강화하고 있는 윤석열정부 들어 일본의 유엔사 가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습니다. 지난해 7월 앤드루 해리슨 유엔사 부사령관이 "유엔사령부에 일본이 참가하면 대북 억제 차원에서 도움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유엔사)에 제공하는 후방기지 7곳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11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한·미 국방장관은 "한·미와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들의 유엔사 참여를 통해 회원국 확대를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독일 '도이체 벨레'가 지난 18일 보도한 '베를린, 긴장된 남북한 국경에 인력 파견' 기사 화면. (사진='도이체 벨레' 홈페이지)
"독일 유엔사 가입이 은근슬쩍 넘어갈 문제인가…일본 가입, 여론 간 보고 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이 유엔사를 중심으로 나토 같은 다국적군을 만들고 안보 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독일이나 일본을 참여시키겠다는 것은 주권에 관련된 문제"라고 우려하면서 "독일이 유엔사에 참여하는 것이 이렇게 은근슬쩍 넘어갈 문제인가"라며 "일본도 '옵서버 참여' 등으로 여론의 간을 보고 있는데, 굉장히 엄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도 "일본은 어떤 식으로든 여기(유엔사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습니다(노무현재단·민주주의 4.0·포럼 사의재·한반도평화포럼의 정전 71년 기념 18일 국회 토론회)
독일 국제공영방송인 '도이체 벨레'(DW)는 지난 18일 '베를린, 긴장된 남북한 국경에 인력 파견'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독일이 한국전쟁 휴전을 감독하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인 유엔군사령부에 처음으로 인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며, 한국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면서 "독일 파견대는 주로 다른 17개 유엔 회원국 장교들과 함께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를 감시하는 고위 군인들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언론도 이 같은 기사를 낼 수 있는 때가 머지않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국회도 그렇고 조용하기만 합니다.
황방열 기자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