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인공지능(AI) 관련 법안이 빠르게 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옛 성현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AI 기본법조차 제대로 제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 취재를 하면서 학계, 산업계, 법조계 등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AI 기본법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진흥과 규제 측면에서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업계마다, 또 소비자 입장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각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누구 하나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 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름대로 다 맞는 말입니다. 또한 각기 처한 상황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닙니다.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포착됩니다. 바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법안이 제정되는 건 동의하지만, 현재는 법안 발의만 한 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좀더 거친 표현을 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알고나 발의를 했겠느냐", 혹은 "미국이나 EU 법을 그냥 가져와서 이름만 올려놨다" 등 원색적인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늦은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법은 제정이 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가지 영향을 줍니다. 더구나 AI 기술이 특정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만큼 각 산업별로 요청하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청취,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의견 반영 등의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겁니다.
이미 산업계는 AI 기술로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생성형AI 기술을 일반인도 손쉽게 접하면서 범죄 목적의 오남용, 저작권 침해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겠죠.
하지만 단순히 외국에 뒤처져 있으니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곤란합니다. 이런 식의 법 제정은 AI 산업 발달과 안정성 도모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다양한 업계의 이야기를 듣고 AI 관련 발의 법안을 들춰보면서 계속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