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제7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폭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에도 내치뿐만 아니라 외치까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방송 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모두 폐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일본이 '강제동원'을 명시하지 않았는데도 한국 정부가 등재에 찬성한 것에 대한 후폭풍도 상당합니다. 한·일 관계를 의식한 나머지 일본의 역사 부정을 수용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4·10 총선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30일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을 포함한 '방송 4법'이 모두 마무리될 경우, 윤 대통령은 이들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대응에 나설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도 방통위법을 제외한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습니다.
거부권 20건 돌파 임박…이승만정부 45건 뒤쫓아
윤 대통령은 또 이번 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이상인 전 방통위 직무대행 겸 부위원장의 후임을 함께 임명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전 대행 후임에는 판사 출신인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 법조인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진숙 후보자의 노조 탄압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집중 추궁해온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임명을 강행할 경우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벼르는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의 임명 강행시 야당과의 대립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2024년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이들 2개 법안의 본회의 상정·처리를 예고했습니다. 이에 맞서 윤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 달 6일 방송 4법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횟수도 조만간 20건을 넘을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총 15건인 가운데, 방송 4법과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6건의 법안을 합하면 총 21건의 거부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최다 횟수입니다. 일각에서는 헌정 초기 이승만정부 때 45건까지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러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일 관계 의식한 나머지…일본의 '역사부정' 수용
윤석열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됐던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한 데 따른 후폭풍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과 일본 등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정부가 순순히 일본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일본이 사도광산 현지에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는 시설물 등을 설치하기로 하고 한국은 등재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한·일 양국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사도광산 설명에서 '강제동원'이 적시되지 않는 등 역사를 바로 알리려는 일본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일본이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또다시 일본 편을 들며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외교 기조를 한·일 관계 개선에 맞춘 나머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마저 동의해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 정부는 29일에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표현이 빠졌다는 한국 내 비판 여론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환영 입장만 밝혔습니다.
윤석열정부가 내치와 외치에서 일방통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총선 참패 이후에도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지 않는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총선 전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없음에도 한·일 관계 개선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여당에 참패를 안겨준 총선 민심을 윤 대통령이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