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만의 선거가 아니다'라는 말대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파장을 바라보는 동북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패권전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은 경제 문제가 걸린 만큼 마냥 미국과 거리를 둘 수도, 북한·러시아와도 마냥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윤석열정부 역시 미 대선이 가져올 파장에 대비해 외교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7일(현지시간)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 이상기류?…미 대선 앞두고 '관리 모드'
29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27일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 왕야쥔 평양주재 중국 대사가 불참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참전 중국군을 기념하는 조중우의탑에 참배하며 "혈연적 유대로 맺어진 조·중 친선이 열사들의 영생 넋과 더불어 굳건히 계승 발전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대비됩니다.
앞서 지난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63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연회에 북한 측 참석자의 급도 낮아졌는데요. 이를 놓고 중국이 러시아와 연대하고 있는 북한에 비례적 대응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특히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 안보 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불참했습니다. 최 외무상 대신 국장급인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자리를 대신했고, 이 영향으로 북·중 양자 회담은 불발됐습니다.
이를 놓고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북·러 간 밀착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25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양자 회담을 가진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중국은 오직 한 국가의 이익만 지지한다. 바로 중국"이라며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한쪽의 편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 같은 중국의 행보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중국 입장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북한·러시아와의 균열이 심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중국도 북·러를 나름의 외교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관리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2기 땐 '가치 외교' 무너져…"외교·안보 라인 바꿔야"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프레임에 거부감을 드러내 온 중국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대비에 나선 건데요. 이른바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이념에 몰두해 온 윤석열정부 역시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석열정부의 외교 방향성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구한 '동맹 중심의 외교'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요.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상황이 달라집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보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를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치나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며 미국 이기주의와 보호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대외관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우리 정부가 바이든정부에서처럼 민주주의 첨병 역할을 자임하다 보면 (트럼프 2기 때는) 마치 십자군 전쟁의 돌격대처럼 최전선에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윤석열정부가 미국 대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외교·안보 라인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추상적 가치·이념 외교에서 벗어나 국가 이익을 위해 우리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에 첨병 역할을 자처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러시아와도 전례 없이 악화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트럼프 집권 때에는 이념과 가치 중심의 외교가 흔들려 국제 외교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중국을 대하는 전술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미국의 대중 전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누가 당선되든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면서 대중 압박에 나섰던 한국만 난처해질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의 차 일본 도쿄를 방문해 미국 <블룸버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결단만 내리면 가능하도록 (7차)핵실험 준비를 마친 상태"라면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이 결정이 미국 대선을 전후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1기 초기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진행한 후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략적 행보가 우려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