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최근 수년간 유통 업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난 초저가 상품에 수요층이 몰린다는 점입니다.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이와 함께 지갑을 닫는 행태가 강해진 까닭인데요. 이처럼 유통 업계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업체들 역시 저렴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상품 출시를 늘려 수요층을 확보해나가는 추세입니다. 무엇보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불황형 소비 패턴 자체가 고착화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업계 역시 가성비에 중점을 둔 상품 라인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가성비 내세운 PB 상품 약진 두드러져
최근 초저가 소비를 지향하는 추세가 짙어지면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주요 오프라인 채널의 자체브랜드(PB) 상품 약진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통계로도 입증되는 실정인데요.
1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닐슨아이큐(NIQ)의 '유통업체 PB 상품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1년 간 국내 PB 상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1.8%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재 시장이 1.9% 상승하는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무려 6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특히 PB 시장의 성장폭은 식품 부문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지난해 식품 PB 성장률은 12.4%로 비식품 PB 성장률의 7.4%보다 5%포인트 높았습니다. 전체 매출 대비 PB 비중이 가장 큰 오프라인 매장은 대형마트(8.7%)였고 기업형 슈퍼마켓(5.3%), 편의점(4.1%)이 뒤를 이었습니다. 또 PB 매출 증가율의 경우 편의점이 19.3%로 가장 높았고 대형마트(10.3%), 기업형 슈퍼마켓(5.7%)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처럼 PB 상품의 인기가 높은 것은 가성비에 최적화된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PB 상품의 경우 기획부터 생산 과정에 거쳐 광고, 마케팅 및 유통 비용이 절감되는 만큼 이를 토대로 일반 제조사브랜드(NB) 상품 대비 월등히 낮은 가격이 책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먹거리를 중심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 PB 상품은 서민층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다르게 먹거리의 경우 계층에 관계없이 소비를 줄일 수 없는 품목인데, PB 상품이 이 같은 가계 부담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죠.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형 소비 가속화로 가성비가 좋은 PB 시장은 앞으로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PB 상품이 저렴한 탓도 있지만, 사실 우리 PB 시장은 규모에 비해 아직은 다른 선진국보다 다변화돼 있지는 않다. 바꿔 이야기하면 PB 시장이 구조적으로 발전 여력이 높다는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이마트의 PB 제품 코너 모습. (사진=뉴시스)
가격 싼 C커머스도 인기…토종 업계도 초저가 행사 '안간힘'
최근 1년여간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의 국내 시장 공습이 거세진 점도 가성비 소비 패턴의 정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C커머스 기업들은 공산품을 중심으로 압도적 물량을 내세우며 국내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가품이 나온 것은 물론 유해 물질이 포함돼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들까지 빈번히 발견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C커머스를 이용하는 수요층이 급증한 것은 판매 제품들의 가격이 너무 싸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판매되는 공산품들의 가격과 비교해 '0'이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니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 C커머스는 효율적인 채널인데요. 특히 상당수 커뮤니티에는 C커머스 플랫폼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고르는 방법이 어느 정도 공유돼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C커머스의 강세는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애플리케이션(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6월 알리의 모바일 앱 월간활성이용자(MAU)는 837만명, 테무는 823만명으로 1위 쿠팡(3129만명)에 이어 2·3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1번가가 712만명, G마켓이 497만명 등으로 뒤를 이었는데요.
알리와 테무는 아직 1위인 쿠팡과는 상당히 격차가 나지만, 둘을 합치면 쿠팡 MAU 규모의 절반을 넘어서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작년 10월만 해도 알리는 613만명, 테무는 265만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성장세가 가파른 모습인데요. 최근 큐텐(Qoo10) 그룹의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파장이 확산되며 이들 플랫폼의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하는 만큼, 오히려 알리와 테무의 영향력은 더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이처럼 C커머스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국내 업계도 대대적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초저가 수요층 공략에 나선 모습입니다. 이마트는 오는 10월 2일까지 '3분기 상시 초저가 상품' 총 50종을 선보이는데요. 이들 상품은 생활 필수 품목들의 가격을 사전 기획, 직소싱, 대량 매입 등을 통해 대폭 낮춘 것이 특징입니다.
롯데마트·슈퍼는 다가오는 추석에 대비해 이달 1일부터 내달 6일까지 가성비에 초점을 둔 추석 선물 세트 사전 예약 행사에 돌입하는데요. 과일 선물 세트의 경우 지난 추석과 비교해 3만원 이하의 세트 품목을 30% 이상 늘리고, 축산 선물 세트는 10만원 미만 물량을 약 40% 확대했다는 것이 롯데 측 설명입니다. 또 11번가는 지난해 9월부터 다양한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9900원샵'을 오픈해 운영 중입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 시장의 양극화가 가속화하면서 애매한 가격대나 품질의 상품은 고객에게 외면받고 있다"며 "이미 초저가 소비 시장이 굳건히 형성되고 고물가 기조도 장기화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이들 수요층을 겨냥한 가성비 제품 프로모션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센터에서 한 택배 기사가 택배 상자들을 정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