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정책금융기관은 매년 정부의 경영실적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경영실적평가 결과가 임직원의 성과급뿐만 아니라 기관의 경영 전략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부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 수행하고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은 만큼 기관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한 평가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경영평가 국책은행 '우수' 일색
(그래픽=뉴스토마토)
19일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지난 5년 간 10개 정책금융기관의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업은행을 비롯한 주요 국책은행들은 A(우수)등급 이상의 평가를 받았으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5년 간 한번도 A등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최근 2년 간 최하위 등급인 D등급에 머물었는데, 내년에도 D등급을 받게 되면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이 됩니다. 경영실적 평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자율·책임경영체계 확립을 목적으로 정부가 매년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입니다.
먼저 금융위의 평가를 받는 국책은행은 꾸준히 A(우수)등급 이상의 점수를 받았는데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지난해 A등급을, 수출입은행은 S(탁월)등급을 받았습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은행업은 변동성이 크지 않아 경영평가 변동폭이 크지 않고 안정적인 편"라며 "국책은행이 C(보통) 나 D(미흡) 등급을 맞으려면 1조 수준의 적자가 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평가를 받는 6개 기관 가운데 기술보증기금(기보)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A 등급을 받았고, 신용보증기금과 무역보험공사는 B(양호)등급, 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C등급,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평가를 받는 한국벤처투자(한벤투)는 2022년까지 S, A등급을 받았지만 2023년 B등급으로 떨어졌습니다. HUG는 2020년(B)을 제외하면 C 등급 이하를 기록했는데요. 재무상태 악화로 인한 낮은 등급을 받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주금공은 2022년부터 C등급으로 떨어졌습니다.
경평 점수 따라 성과급 갈려
경영평가 결과는 임직원들의 성과급과 직결됩니다. C등급 이상인 기관을 대상으로 유형·등급별 차등 지급되는데요.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공기관 직원은 최대 월 기본급의 250%, 준정부기관은 100%를 성과급으로 받습니다. 경영평가는 성과급뿐 아니라 기관장의 거취까지 좌우합니다. E(아주미흡) 등급을 받을 경우 기획재정부는 재임 기간 6개월 이상 남은 기관장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습니다.
2년 연속 D등급을 받은 기관의 수장도 해임 건의 대상입니다. 다만 연말 기준으로 재임 기간이 1년 이상 남은 기관장이 그 대상에 해당됩니다. HUG의 경우 2년 연속 D등급을 받았는데요. 유병태 HUG 사장은 지난해 6월 취임했기 때문에 해임 건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또 다시 D등급을 받게 되면 해임 건의 대상이 됩니다.
기재부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을 발표하면서 각 기관별 평가 기준과 항목을 공개합니다. 경영관리와 주요 사업의 성과를 종합평가하는 큰 틀은 변하지 않지만 정권과 기관의 상황에 따라 평가 항목과 배점 비중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일례로 지난 2022년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개편하며 '사회적 책임'배점 비중을 낮추고 '재무성과 관리' 비중을 높였습니다. 2017년에는 사회적 책임 배점을 높이고 재무성과 배점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편한 바 있습니다.
기관 역할 고려해 평가해야
금융위원회(왼쪽)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에 대해 매년 경영실적 평가를 내린다. (사진=뉴시스)
정책금융기관 내부에서는 정부의 경영평가가 혼란스럽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1조에 공공기관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이 명시된 만큼 경영평가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경영평가는 경영진들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경영진의 신상필벌 자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전체 직원의 성과급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고용조건의 결정을 정부에서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운법에 기재한 것과 달리 정부는 완전 정반대로 기관의 자율성과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기관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우선으로 한다는 취지에 맞게 경영평가를 개편해야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경영평가는 공기업(및 준정부기관) 설립 기본 취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며 "기관마다 설립 취지와 역할이 다른데 평가 기준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해선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적에 맞게, 실질적으로 평가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관 설립 법에 근거해 평가 기준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경영평가를 하면서 혜택을 받는 기관이 있는 반면 페널티를 받는 곳도 있다"며 "국회와 기재부를 중심으로 경영평가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조만간 (경영평가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공기관의 근거법상 목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기후테크, 청렴지수, 수요자 반응(국민여론)등에 대한 평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난 국회에서 기업의 RE100 참여를 선도하기 위해 공기관 경영평가에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반영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중증 장애인 생산품 구매촉진의무에 대한 준수 여부를 경영평가 항목에 반영하는 법안도 발의된 바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모두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 됐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