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청년과 중장년 세대의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는 방식의 연금개혁안 추진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1년 반 넘게 숙의한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산하 연금공론화위원회의 '더 내고 더 받기'식의 합의안은 사실상 폐기됐습니다. 특히 인구 구조 변화나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급여)을 자동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 운영 시 되레 고령층에게 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액은 삭감하는 '이중 부담'(더 내고 덜 받는)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기자회견'에서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의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4일 보험료율 인상폭과 소득대체율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한 연금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숙의안 걷어차고…세대 갈등 던진 윤 대통령
연금 개혁의 핵심은 '노후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인데요. 윤 대통령이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한 것은 '재정 안정화'에 중점을 둔 것으로 분석됩니다. 연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를 인상할 때 연금 수급 시점이 가까운 중·장년층이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율을 부담하게 하는 것인데, 자칫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연금 개혁 방향으로 재정 안정화를 택한 것은 감세에 따른 세수 펑크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최근 경기 침체가 감세 쏠림 정책과 맞물리며 지난해 법인세는 전년보다 23조 2000원이나 덜 걷혀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습니다. 올해도 상반기 기준 법인세가 지난해보다도 16조 1000억원 덜 걷혀 2년 연속 '세수 펑크' 우려가 나옵니다. 건전 재정을 이유로 진행되고 있는 긴축 기조가 연금 개혁 방향에도 반영되는 셈입니다.
특히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땐 고령층의 '이중 부담'은 불가피해집니다. 자동안정화장치는 출산율, 기대 수명, 경제 성장률 등에 맞춰 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낼지, 수급자에게 연금액을 얼마나 줄지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기금이 고갈될 상황이면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급액을 줄이게 됩니다.
다만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고령층의 보험료 부담은 높아지고, 노후소득 보장성은 낮아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현재 고령화와 낮은 출생률,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이번 연금 개혁안은 결국 연금 급여를 낮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민주당의 전진숙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필요성·적용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안전화 장치 제도가 도입될 경우 생애총급여액이 17% 삭감되는 것으로 추계됐습니다. 자동안전화 장치 도입이 소득보장액의 감소로 이어져 열악한 노후소득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겁니다.
사진은 지난 1월9일 서울 소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무너지는 '세대 간' 소득 '형평성'…"보완 조치 필요"
근본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소득에 따른 형평성을 함께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화에 따라 중장년층 안에서 비정규직, 저소득자는 더 내고 덜 받게 되고, 청년층 전문직, 고소득자는 덜 내고 더 받게 되는 식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 200만원 수입의 50대 일반인이 기존보다 보험료를 더 내면서 연금은 더 덜 받을 수 있고, 연봉 1억원 수입의 20대 일반인이 기존보다 덜 내면서 더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중장년층에서 보험료 부담이 커질 경우, 납부유예 등으로 무연금·저연금자로 갈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장년층 중 어려운 분들이 있고, 그분들을 지원하는 보완 조치가 같이 결합돼야 한다"며 "보완 조치가 이뤄지면 국민연금 안에서의 존재하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함께 개선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 "청년 부자의 문제는 조세 제도를 통해서 해결해야 되는 것이지, 보험료율 안에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