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게임을 하면 자녀들은 불량아가 되고 어른들은 일상 생활이 무너진다는 게임 포비아(phobia, 공포증)가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한 중학생,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유학생, 왕따 문제로 자살한 중학생 등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의 책임을 모두 게임으로 전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게임을 하게 되면 중독이 돼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빈약한 사회 보장 제도, 비인간적인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제도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지지를 얻지 못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불확실한 정보를 확대시키면서 게임 공포증을 더욱 확대시켰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국내 인터넷 중독자수가 200만명이라는 수치는 일부 언론과 단체들을 통해 ‘온라인 게임 중독자 200만명’으로 변질됐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이들은 ‘인터넷 중독자는 대부분 온라인 게임 중독자’라는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내세운다.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에 오는 문의에 80%가 게임과 관련됐다는 보고는, ‘인터넷 중독자의 80%가 게임 중독자’로 재생산됐다.
일본에서는 사이비 과학으로 치부되는 ‘게임뇌’ 이론을 그대로 가져와 발표하는 단체들도 있다.
또 모 국회의원은 최근 TV 토론회에 나가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유학생은 며칠 동안 온라인 게임을 했다”며 “일본은 게임산업이 발달했지만, 국내와 달리 개인적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 사업이 발달해 한국과 같은 끔찍한 사고가 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가해자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을 했었던 것으로 경찰은 발표했다.
게임사가 이용자가 잘 중독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기술자를 높은 급여를 주고 고용하고 있다는 루머도 언론을 통해 사실처럼 보도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그래픽, 사운드, 스토리,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로 개발 과정이 분업화 됐고 게임의 성공과 실패 요인도 복잡해진 상황에서, 전문적으로 중독성을 높이는 개발자는 존재할 수 없다.
게임업계는 잘못된 정보들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여론이 나쁜 상태에서 역풍을 우려한 탓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게임은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대표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용자가 많은 만큼 불미스러운 사건과 연관될 가능성은 많아졌다”며 “억울한 면도 있지만 그 동안 게임업계가 사회 환원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게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는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들이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시행되고 있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1월 20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셧다운제’는 심야 12시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제도다.
시행 전부터 청소년 보호 효과는 없고 게임산업에 부담만 주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여가부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시행 후 한달이 지난 현재 ‘셧다운제’는 예상대로 무용지물이 됐다.
그러나 해외 게임사와 투자자들이 셧다운제 도입 이후 국내 게임사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중소 게임사들은 셧다운제를 적용하기 위한 시스템 확충 비용이 부담이 되고 있다.
게임업계는 게임에 대한 규제가 계속 강해지는 것을 우려한다.
이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용자가 자신의 게임 시간을 특정 시간에만 가능하도록 요구하는 ‘선택적 셧다운제’ 법안을 만들었다.
여가부는 셧다운제를 보다 확대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게임까지 셧다운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게임은 미래 새로운 게임산업으로 주목 받는 분야로, 현재 전세계 게임사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만약 스마트폰 게임에 셧다운제가 적용될 경우, 국내 스마트폰 게임 사업은 괴멸되고, 대신 그 자리는 셧다운제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게임들이 채울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문화의 한 부분이고, 나라에서 법이나 정책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게임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제도라고 자랑하지만, 서양 문화를 억지로 막았던 조선시대 쇄국정책 같은 구시대 정책이 부활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