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불법장물을 사회로 환원하라고 했더니 장물을 몰래 팔아 주군의 승리를 위한 대선자금으로 쓰겠다는 꼴."
정수장학회가 MBC ·부산일보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MBC 경영진과 비밀리에 회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수장학회의 투명한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수장학회 공대위 "희대의 정언유착"
'독재유산 정수장학회 해체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15일 오전 11시 정수장학회가 입주해 있는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의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희대의 장물처리 계획을 공영방송 수뇌부가 입안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정언유착이 아니라 할 수 없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자신의 대리인 최필립 이사장을 즉각 사퇴시킴과 동시에 정수장학회를 해체하고 사회 공익을 위해 올바르게 재구성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선거법과 방송법을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며 국회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부산일보를 팔겠다? 시민을 공범자 만들 속셈"
정수장학회는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등 군부세력이 부산지역 기업가 고 김지태씨로부터 '헌납' 형식으로 빼앗은 것이다.
정수장학회가 지분 100%를 쥐고 있는 부산일보에서 편집권 독립 움직임이 시작된 이래 시민사회는 1년 가까이 정수장학회의 투명한 사회 환원을 촉구해왔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우리는 정수장학회를 고 김지태씨에게서 빼앗은 장물로 규정한다"며 "장물을 관리해온 최필립 이사장과 정권에 철저히 장악된 MBC 사장 김재철이 이번에 선거운동을 모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계획에 대해 "도둑질한 것(정수장학회)을 국민에게 팔려고 내놓다는 것은 국민을 공범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위원장은 "정말 이 나라에 상식이 있는가 묻고 싶다"며 "오래 전에 남의 자산 강탈해가 수십년간 사적으로 활용해왔는데 당장 내놓고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이를 선거에 활용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최필립 이사장과 김재철 사장은 진작에 사퇴했어야 할 사람들이고 이번 음모를 진행한 배경으로 박근혜 후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 김지태씨 유족 "언론사를 상품처럼 파는 법 어디 있나"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송혜영 여사 등 고 김지태씨 유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씨의 5남 김영철씨는 "정수장학회의 자산 매각 추진은 이번만 있던 게 아니다"라며
"1971년 대선 당시에도 박정희 정권이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갖고 있는 언론사를 팔려고 했고 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아버님은 5·16 장학회에 내용증명을 보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언론사를 상품처럼 팔면 안 된다, 차라리 내게 팔라'고 하셨다"라고 덧붙인 뒤 "유족의 입장은 그때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놀라운 건 1971년 당시도 대선정국이었고 지금도 대선정국"이라며 "박근혜 후보는 빼앗은 재산을 물려받은 재산이라 생각하고 최필립 이사장은 그것을 상품처럼 팔 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가 자신과 무관하다고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유족이 함께 하는 진정한 사회 환원에 나서라"고 밝혔다.
◇김재철 자리보전 위해 친박으로 갈아타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계획은 MBC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MBC 노조의 최장기 파업으로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김재철 사장이 돌파구로 꺼내든 카드라는 평가다.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이 친MB에서 친박으로 말을 갈아타려고 이번 일을 모의한 것"이라며 "꼼수 부리지 말고 MBC·부산일보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각 당사자로 거론된 언론사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영하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 지분 매각 협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게 사측 주장"이라며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서 그렇게 할 자격도 권한도 없는 사장이 자기 자리 하나 보전 받겠다고 정수장학회를 부추기고 MBC를 던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은 "부산일보 구성원들은 현재 비참한 기분"이라며 "피와 땀과 눈물로 이만큼 키우고 지켜낸 부산일보를 무슨 자격으로 팔아치우고 여권을 보호하는 '빽'으로 쓴다는 소리인지 기가 막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 정수장학회 항의방문..보수언론도 최필립 이사장 사퇴 촉구
부산일보 출신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도 "부산일보와 MBC를 누구 맘대로 팔겠다는 것"이냐며 "이 같은 선거 획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배 의원을 비롯해 최재천, 전병헌, 최민희 등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정수장학회를 항의방문했지만 최필립 이사장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번 사건에 대해 친여·보수색채 언론들까지 정수장학회와 최필립 이사장의 책임을 거론하고 나선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15일 조선일보는 "최필립 이사장이 정수장학회 재산권 행사할 때인가"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정수장학회 처분과 경영, 새 이사장이 맡아야"라는 제목으로 나란히 사설을 실었다.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는 "조선일보가 사설로 비판한 것은 우리사회 밑바닥 정서까지 드러낸 것"이라며 "MBC와 정수장학회는 이번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MBC 사측은 언론보도로 이번 사건이 드러난 직후부터 '도청 의혹'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영하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도청여부가 아니다"라면서 "양측이 어느 선까지 논의했는지 진상 여부를 확인하는 싸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