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과 뮌헨 필하모닉의 내한 연주회가 22일과 23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로린 마젤은 지난 2월 리카르도 무티 대신 시카고심포니와 함께 한 지 2개월 여 만에, 뮌헨 필하모닉은 6년 만에 내한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로린 마젤의 느리면서도 섬세한 곡 해석, 게르만 정취가 물씬 풍기는 뮌헨 필하모닉의 정통 사운드가 어우러져 묵직한 화학반응을 빚어냈다.
22일에는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과 교향곡 4번, 교향곡 7번을, 23일에는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선보였다. 특히 베토벤의 향연 이후 이어진 이틀째 공연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과 더불어 이례적인 대규모 악기 편성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도 고전과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거장들의 묵직한 음악세계가 돋보였다.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의 경우 도입부의 목관 소리 부분부터 탁월한 관객 몰입도를 이끌어냈다. 작은 소리를 고집스러우리만큼 균일하게 내는 목관에 이어 극도로 섬세한 금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공연장을 꽉 채우는 풍부한 현 소리까지 얹어지면서 환상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로 인도했다. 과장되지 않은 세련미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흘려 보내는 연주가 일품이었다. 첫 곡이 끝나자 벌써 기립박수가 나왔을 정도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경우 느리고 진지하면서도 섬세한 연주가 돋보였다.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이 무게감 있는 공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조성진은 작곡 당시 사랑에 빠져 있던 베토벤의 혼을 담아내듯 여리면서도 정확한 타건으로 관객의 눈도장을 톡톡히 받아냈다. 앵콜 곡으로 선사한 슈베르트 즉흥곡의 경우 무대 위 뮌헨 필하모닉 단원들조차 감탄하는 눈치였다.
대미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장식했다. 이 곡은 1910년대에 작곡된 현대음악으로, 박력 넘치는 원시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뮌헨 필하모닉은 1부 대지 예찬 초반부에서 계속해서 변하는 박자 속에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다 이어 본능을 중시하는 춤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곡은 비교적 느리게 진행됐지만 격렬함과 엄숙함이 섬세하게 교차되면서 청각신경을 하나하나 깨우는 느낌이었다. 2부 희생에서는 은밀한 밤에 진행되는, 신비롭고도 처절한 제사 분위기를 연출했다. 볼륨보다는 깊은 울림을 강조한 타악기의 연주가 마치 여린 비명처럼 들리는 피콜로 소리와 적절히 어우러지며 거룩한 절정으로 인도했다.
공연은 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 프로그램으로 관객의 영혼을 흔든 후, 앵콜 곡으로 비제 아를르의 여인 중 '파랑돌'까지 연주하며 끝이 났다. 83세의 거장 로린 마젤과 뮌헨 필하모닉의 섬세하고도 진중한 음악세계가 긴 시간에 걸쳐 펼쳐졌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