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북한이 장성택을 군사재판 단심으로 전격 처형한 것을 놓고 새누리당은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진 마냥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39년 전 이 땅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다.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얘기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로부터 '인혁당 재건위' 관계자로 지목된 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형은 불과 18시간 뒤인 4월 9일 새벽에 집행됐다. 체포 5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성택의 경우와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신속한 처형이었다.
비극적이지만 인혁당과 장성택 두 사건은 사형이 집행된 속도 말고도 비슷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최고 존엄'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장성택은 3대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의 고모부임에도 실각설이 불거지더니 김정은 체제의 전복을 꾀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제거됐다.
인혁당 희생자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당시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의 배후를 조종했다는 이유로 사형됐다.
그런데 문제는 인혁당 희생자들이 독재정권으로부터 누명을 쓴 채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점이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었다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인혁당 희생자 유족들은 이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결국 2007년 1월 23일 서울 중앙지법은 인혁당 희생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사상 암흑의 날'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인혁당과 장성택. 마치 평행이론처럼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남한에서 자행됐던 만행이 39년의 세월이 흘러 북한에서 되풀이된 셈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박정희의 딸이라는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전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아버지를 두둔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헌법 가치 훼손"을 운운하며 마지못해 사과한 바 있다.
내란음모 혐의로 진보 정당이 해산 위기를 맞고 대통령을 비난했다고 제1야당 국회의원이 제명될 처지에 몰리고 포털에서 '박근혜' 연관검색어로 '공포정치'가 나오는 상황.
바야흐로 한반도가 공히 공포정치의 시대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