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올해도 한국 축구의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꼭대기인 축구대표팀을 향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국내 K리그 시장은 휘청거리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축구인은 "머리만 큰 가분수와 같다"고 표현했다.
유망주와 스타 선수를 불문하고 해외 구단에서 영입 제안이 오면 이를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내 축구 선수들은 해외 굴지의 유명 클럽부터 비교적 축구 약체로 평가받는 중동 리그까지 어디든 떠나고 있다.
◇김남일. (사진=프로축구연맹)
올해 전북현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은 김남일(37)이 지난 23일 일본 J리그 2부팀인 교토퍼플상가로 이적을 확정했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김남일은 지도자 연수까지 제안한 교토 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2한일월드컵 주역이자 K리그 베테랑인 그가 일본 2부 리그로 간다는 소식에 대다수의 축구 팬들은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구단이 줄 수 있는 연봉과 해외 구단이 제시하는 연봉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남일은 이적 이유로 '또 다른 도전'을 들었다.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국가대표 수비수이자 FC서울 주전 수비수인 김주영(26)도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 둥야 이적을 발표했다. 빠른 발과 지능적인 수비가 장점인 그는 K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힌다. 하지만 서울은 "대승적 차원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주영이 끝이 아니다. 서울의 공격을 풀어나가는 미드필더 고명진(26)도 J리그 빗셀 고베로 이적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주전 미드필더 하대성과 주축 골잡이 데얀을 모두 중국으로 내보낸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은 올해도 선수를 뺏기고 말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돈의 힘'을 앞세운 중국이 제시하는 몸값은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서울로서는 이들의 이적료를 받아 유망주나 기타 환경에 재투자하는 게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다.
◇김주영. (사진=FC서울)
지난 6월 포항의 공격을 이끌던 이명주(24)는 아랍에미리트의 알아인으로 이적했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K리그 역대 최다 이적료(350만 달러·약 38억원)인 이청용(2009년 FC서울→볼턴 이적)의 기록을 넘었다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연봉 또한 10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유럽 진출설까지 나왔던 그가 중동행을 택했지만 포항은 붙잡을 수 없었다.
군인 신분으로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해 경례 세리머니를 선보였던 이근호(29)도 지난 9월 전역 직후 울산으로 복귀하지 않고 카타르의 엘자이시로 이적했다. 이근호의 복귀를 애타게 기다렸던 울산과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대형 신인으로 관심이 쏠렸던 류승우(21)는 제주에 입단하자마자 독일 레버쿠젠으로 임대돼 지금은 완전 이적에 합의했다. 유망주의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손뼉 칠 일이지만 과거 박주영(알샤밥),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볼턴) 등이 K리그에서 기량을 갈고닦다 떠난 것과 비교하면 K리그 입장에선 아쉽다.
올 시즌 신인 최고의 공격수로 관심을 끈 황희찬(18)은 포항과 세부 계약을 진행하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계약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포항 유스 출신인 그의 이적을 놓고 축구계 안팎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는 유스 출신도 하루아침에 떠나느냐"는 불만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포항의 뒤통수를 쳤다"는 거센 비판도 나왔다.
◇황희찬. (사진=포항스틸러스)
축구 시장 자체가 세계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스타 선수 뿐만 아니라 유망주들마저 K리그 잔디도 밟아보지 않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K리그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과거 해외진출이라고 하면 국내 최정상의 선수가 유럽 대형 클럽으로 이적해 또 다른 도전을 한다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일본, 중동 등 결코 더 나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
중국 축구 사정에 밝은 한 에이전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앙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를 눈여겨보고 있는 구단이 많다"며 "K리그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고 성실하다는 인식이 중국에 있다"고 전했다.
반면 올 것이 왔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성이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K리그가 더이상 우수한 선수를 붙잡을 힘이 없다는 얘기다.
한 축구 관계자는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K리그에서 뛸 경우 빡빡한 합숙 생활에 따른 불만도 있다"며 "밖에(해외에) 나갔을 때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부분도 이해가 된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