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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침묵하는 주주의결권…형식적 주총 폐해 막으려면
법 개정해 정기 주총 시기 분산시켜야…기관투자자, 전자투표·위임장 이용 확대 필요
입력 : 2015-11-12 오후 6:00:00
"주주총회가 형식화, 무력화되면서 있으나 마나 한 절차가 돼버렸습니다. 다수의 주주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소수의 말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된 겁니다. 다수가 힘이 없는 건, 이들이 말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이상빈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기업 경영이 주주 전체의 가치보다는, 일부 소수 주주의 의사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다수의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주총은 다분히 형식적입니다. 평균 지속시간이 30분 내외에 불과하고, 전체 상장사 중 80%의 주총이 특정한 3개 날짜에 집중돼있습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과 같은 사례를 찾기는 힘듭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영진이 다수 주주를 환영하기는 커녕 피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국내 기업에서 '말 많은 소수'가 '말 없는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개인 주주들이 자신의 의사를 최대한 전달해야 할 주주총회도 이미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주총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다수 주주들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땅콩 회항' 사건이나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이슈가 되면서 능력 없는 일부 오너가 경영권을 독점하는 데 따른 문제의식이 커졌고 다수 주주들의 의결권이 더욱 적극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주 의결권 강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12일 관련 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주주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막는 가장 큰 장벽은 무용지물이 된 주주총회다. 한국예탁결제원의 분석결과를 보면, 12월 결산법인의 98%가 올해 3월에 주총을 열었고, 장소는 서울에 집중됐다.
 
이렇게 주총 시기와 장소가 집중되는 행태는 매년 반복돼왔다. 다양한 기업의 주식을 보유했거나 지방에 거주 중인 주주의 경우 주총에 참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셈이다. 이 경우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이 적용돼 자신의 의사가 아닌, 참석 주식 수의 찬반비율에 따라 자동으로 의결이 진행된다.
 
섀도우보팅 제도는 소수 주주의 경영권 독점을 부추긴다는 폐해 때문에 지난 1월 폐지될 방침이었지만, 상장사들의 반발에 밀려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에 한해 오는 2017년 말로 유예됐다. 전자투표란 각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에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뜻한다.
 
그러나 대안으로 도입된 전자투표제도 저조한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예탁원에 따르면, 전자투표·전자위임장 시스템을 계약한 기업 주주들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주식 수를 기준으로 1.76%에 불과하다.
 
전자투표에 대한 인식도 저조하다. 유가증권상장사 주식을 다량 보유 중인 개인투자자 A씨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온라인으로 의사 표시하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만약 알고 있었다면 즉시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투표제 홍보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다수 주주들이 의결권을 충분히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 상장사와 주주 간 원활한 소통, 전자투표제 홍보 활성화, 주총 시기 분산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순석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매년 3월에 집중되는 정기 주총 분산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이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임출 예탁결제원 예탁결제본부장도 "주주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 기업과 정책당국이 노력해야 한다"며 "아울러 전자투표 활용이 발행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yihj0722@etomato.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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