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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상 시위' 학생들 1년6개월 만에 150만원 약식기소
‘월급 30만원’ 취준생·알바생도 일괄 처분 가혹 비판
입력 : 2015-12-04 오전 6:00:00
"아르바이트로 벌어 먹고사는데 벌금을 내기도 벅차죠. 그렇다고 정식재판을 청구하기도 부담스럽고…”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신림동에서 노무사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27)씨는 지난달 27일 검찰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벌금 15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는 내용이었다. 미신고 집회를 이유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해 5월 경찰 조사를 받은 지 1년 6개월 만에 날아든 소식이었다.
 
이씨 등 대학생 8명은 지난해 5월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위에서 '(세월호)유가족 우롱하는 박근혜대통령 퇴진'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전면수용하고 특검을 실시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읽었다.
 
그러나 시위는 거기까지였다. 이씨 등은 시위 20분 만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됐다. 이들은 조사를 받는 동안 유치장에 구금된 뒤 하루가 지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경찰은 이씨 등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이문한)는 이씨 등 5명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7일 벌금 15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나머지 3명은 초범이거나 가담 정도가 약하고 학생 신분이어서 기소유예 처분했다"며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등과 함께 약식 기소된 김모(21)씨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씨는 "벌금을 아르바이트로 벌어 충당할지 정식재판을 청구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함께 기소된 다른 이모(24)씨는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데 월급이 30만원이다. 벌금액이 부담 된다"며 말끝을 흐렸다. 
 
집시법 위반 사범 중에는 이들처럼 경제적 능력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미신고 집회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폭력적이거나 도로교통 방해 등 피해 발생의 위험이 없는데도 일괄 기소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집시법 22조는 미신고집회로 기소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벌금형이 징역형보다야 낫겠지만 100만원 이상의 벌금이 선고되면 이씨처럼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린 학생들은 벌금형 이상의 고통이 수반된다.
 
때문에 미미한 집시법 위반범에 대해서도 일률적인 벌금액으로 약식기소하거나 정식재판에서도 그같이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더러 기본권으로서 집회·시위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이같은 사례에 대해 "(벌금이)학생들한테는 큰 액수고, 시위를 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손해를 끼친 게 없다. 광장이니까 교통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상을 망가뜨린 것도 아니다"며 "불법이라는 이유만으로 평화롭게 진행된 집회를 벌금을 물려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집회·시위는 본질적으로 범죄행위가 아니라 기본권 행사"라며 "평화로운 집회나 시위는 본질적으로 기본권 행사이기 때문에 금지하지도 말고 사후적으로 처벌을 시도 하면 안 된다. 국제 기준도 그렇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집시법 위반사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필요 이상의 수사를 받는 경우도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앞의 이씨 등은 경찰에서 석방되기 전에 휴대폰을 압수당했다. 이들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경찰이 확인하기 위해서다.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 따른 것이기는 했지만 초범들에게는 가혹하다는 비판이다. 모 신학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휴대폰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되돌려 받았다.
 
박 변호사는 "집회하다가 잡혀서 휴대폰 압수수색하는 건 흔치 않다"며 "경찰이 필요 이상의 증거를 얻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에서 통신비밀이 수사기관에 노출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씨 등은 4.16참사법률지원센터 등을 통해 변호사단체의 도움을 받아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모(27)씨 등 대학생 8명이 지난해 5월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위에서 '(세월호)유가족 우롱하는 박근혜대통령 퇴진'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이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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