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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국정원 견제는 사법부의 의무다
입력 : 2016-04-25 오전 6:00:00

이우찬 사회부 기자
‘좌익효수’ 유모(42)씨가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인터넷 공간에 숨어 활동하던 그는 국정원 직원이다. ‘좌익효수’는 좌익 혹은 좌파세력의 목을 장대에 매달아 죄를 묻는다는 뜻이다. 이 아이디로 유씨는 2011년 4·27 재보궐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인터넷에 수천 건의 정치성 댓글을 게시한 혐의(국정원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아이디 만큼이나 유씨의 게시글은 끔찍했다. ‘X학규 가식 떨긴 개XX’, ‘문죄인이 이XXXX 드디어 정신줄을 놓아버렸구나’는 식이다.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던 일반시민 여성에게는 ‘죽이고 싶은 빨갱이 XX’ 등이라고 공격하고 11세 된 그 딸까지 모욕했다. 그는 모욕죄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유씨를 특정 정당인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국정원법 9조2항4호만 적용해 기소했다.‘직위’를 이용하지 않은 개인적 행동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소 당시 검찰은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선은 법원으로 쏠렸다. 그러나 법원은 국정원법 위반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검찰보다 한발 더 물러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창경 판사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낙선 목적 의사가 능동·계획적으로 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범죄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나친 형식논리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같은 날 선고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도 유씨 판결과 궤를 같이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7부(재판장 예지희)는 국정원 내부 전산망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종북좌파’라고 지목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를 선고한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국정원 내부 표현행위에 불과해 공연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전파성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안전을 전제로 쥐어 준 권력이다.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거나 권력 균형에 따른 견제도 없다. 사법부는 이런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장치지만, 이번 솜방망이 판결은 국정원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지난 3월 테러방지법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국정원은 테러위험인물의 금융정보와 개인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조사와 추적권도 확보했다. 국정원이 날개를 단 셈이다. 국정원을 견제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의무가 더 커졌다. 그 의무의 엄중함을 가볍게 여긴다면 국정원의 전횡에 대한 책임에서 사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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