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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요즘 애들 책 안읽는다고요? 저희는 불금에 책 마셔요"
2030 독서모임 '책사모'…"책 통해 소통하고 교류해요"
입력 : 2016-06-08 오후 1:59:54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남자가 오열하는 모습에 대중이 호응해 (추모열기의) 기폭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동학대 사건 역시 가녀린 몸으로 CCTV에 찍힌 모습을 보고 다 같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거죠. (타인의 고통이) 이미지화 돼서 내 감정을 건드렸을 때 와 닿는 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이상희)
 
"타인이 느끼는 고통은 당연히 이미지로 상상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과연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상상해 느낄 수 있을까요? ‘이 정도겠지’하고 예상하는데 그칠 겁니다. 정말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까요?"(강성진)
 
지난 3일 불금이 한창인 강남역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 주체는 2030 독서모임 '책사모(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였다. 이날의 주제도서로 선정된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책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주요 소재로 보도사진을 다뤘지만 토론에서는 SNS에서 공유되는 사진까지 논의가 확장됐다. 이어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파리테러를 추모하는 삼색기 등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추모하는 것을 강요하고 인증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30세 안팎의 젊은 토론자 22명은 3개 방으로 나뉘어 두시간을 가득 채워 토론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 '책사모'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 사진/원수경 기자
 
책사모 초창기부터 함께 했다는 운영진 김지훈 씨는 책사모는 "불금에 책을 마시는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의례적인 불금은 아니지만 책사모는 토론을 통해 더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13년 9월 시작한 모임은 현재 온라인 카페 회원수가 3500명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편견 없이 책에 집중하기 위해 개인 신상에 대한 것은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김 씨는 "기본적으로 '님' 호칭을 쓰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나이나 지역 등 연고에 대한 것을 전혀 물어보지 않고 책 얘기만 한다"고 설명했다. 카페에서 선정된 책을 보고 참가 신청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스템으로 참여에 대한 부담은 없다. 하지만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신청목록에는 늘 대기자가 달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젊은 독자들의 모임이지만 읽는 책은 가볍지만은 않다. '데미안', '앵무새 죽이기' 같은 고전에서 '헤겔&마르크스'나 '니체의 인생 강의' 같은 철학책까지 폭이 넓다. '오베라는 남자', '은교' 같은 베스트셀러 소설도 들어있다. 추천 도서를 중심으로 선정하되 주제가 겹치지 않는 책들을 찾다 보니 범위가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3년 가까이 매주 한권씩 책을 읽으니 함께 읽고 토론한 책만 110권이 넘는다고 한다. 
 
독서모임 책사모 회원들. 사진/책사모
 
참가자들이 말하는 함께 읽기의 장점에는 공통적으로 '열린 소통'과 '생각 교류' 등이 있었다. 지난 2014년 1월부터 모임에 참여했다는 강성진 씨는 "참가자 중에 회사원이 많은데 회사생활에서는 수직적인 구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며 "모임에 나와서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얘기해도 누구 하나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니 그 부분에 만족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합류한 최지혜 씨는 "친구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최 씨는 "친구들끼리 있을 때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 하면 왜 그러냐는 반응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책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같이 공감해주니 좋다"며 "뒤풀이 술자리에서까지 책 얘기를 하는 것도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겪어보니 오히려 더 좋았다"고 말했다. 
 
2년 가까이 참여한 강선영 씨는 "모임에 와서 이야기하다보면 혼자 읽으면서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는 점에 좋다"며 "매주 한 책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질문을 접하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또 "책을 읽다보면 나와 사회와 연관된 질문을 던지게 돼 인생에 대한 질문을 찾는 연습을 할 수 있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반년째 참여중인 이상희 씨는 독서모임이 "병원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를 보면 한 가지씩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치유하는데 이 곳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평소 말수가 적다는 이 씨는 모임을 통해 스피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참여한 강예진 씨는 "원래 책을 가려 보는 습관이 있는데 어떤 책이든 읽어보려고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사모는 앞으로 책을 읽는 데에서 더 나아가 책을 나누는 활동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반기부터는 책모임에 대한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책이 부족한 소규모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활동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강성진 씨는 "작은 도서관은 책을 기증받을 수 있는 단체가 있는지 물색하고 있다"며 "인맥을 통해 기증받을 수 있는 곳을 연결하거나 카페 회원들의 도움을 통해 각자의 이름 혹은 책사모의 이름으로 기증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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