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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추락하는 유럽 기업에는 날개가 있을까
국수주의·전략 실패로 기업 규모·경쟁력 후퇴…M&A가 돌파구 될까
입력 : 2016-07-13 오후 12:00:00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유럽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 불확실성 확산으로 증시가 급락하는 등 브렉시트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방향을 상실한 유럽 기업들은 투자계획을 철회하고 나섰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두운 경기 전망 속에서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긴축 경영에 돌입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 유럽 기업들은 브렉시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때 세계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과 각축을 벌이던 영국 기업들이 추락하고 있으며 이는 브렉시트 이전부터 진행돼 온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시기상 가혹하다고 느낄 수 있는 평가라고 덧붙이며 미국 기업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유럽 기업을 진단했다.
 
유럽 기업들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 이미 지난 십여 년간 정체기를 거친 이들의 하락세는 브렉시트 여파로 가속화될 전망이다. 유럽 기업은 21세기 초만 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군림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이 침체 국면에 빠진 후, 미국 기업과 양강구도를 이루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직전에는 역사상 최고 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시가총액 및 순이익 등 경영성과지표는 유럽 기업의 규모가 급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인수 대상이 되는 등 생존력을 잃어가고 있다.
 
유럽 기업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기울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런던에 모여 브렉시트 재투표 청원을 위해 행진하는 모습. 사진/뉴시스·AP
 
 
전 세계 기업의 규모를 비교해 줄 세워보면 유럽 기업들의 순위는 크게 떨어졌다. 최근 발표된 전 세계 50대 기업 순위에 든 유럽 기업은 고작 7개뿐이었다. 반면에 미국 기업은 31개가 순위에 올랐고, 중국 기업도 8개나 들었다. 200650위 안에 포함됐던 유럽 기업 17개 중에서 반 이상이 밀려난 상황이다. 50대 기업에 든 7개의 유럽 기업도 전통적인 유럽 기업은 아니다. 3개는 스위스 기업이고, 벨기에 맥주회사 AB인베브는 브라질 부자가 소유하고 있다.
 
유럽을 이끌던 기존 선두 기업들은 중간 순위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 영국의 정유회사 BP, HSBC 은행, 이동통신회사 보다폰은 모두 산업별 순위에서 중간으로 밀려났다. 프랑스의 석유대기업 토탈, 비엔피파리바 은행, 오렌지텔레콤, 제약회사 사노피-아벤티스도 마찬가지로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했다. 24개 분야의 산업별 순위에서 1위에 오른 유럽 기업은 식품 분야의 네슬레 뿐이다.
 
국가경제 규모 비슷하지만, 기업규모는 절반 수준
 
유럽과 미국의 경제 규모는 비슷하지만 기업의 규모는 확연히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179000억달러, 유럽연합(EU)162000억달러로 견줄 만하다. 세계은행(WB)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유럽연합의 GDP가 좀 더 높다. 11조달러로 3위인 중국보다 1·2위를 다투는 미국과 EU가 훨씬 앞선다. 하지만 기업 가치는 유럽 기업보다 미국 기업들이 월등히 높다. 유럽의 상위 500개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는 미국 상위 500개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순이익의 합계는 측정기준에 따라 약 50~65% 적다. 중간 기업을 비교해 봐도 그 차이는 뚜렷하다. 미국의 500대 기업을 일렬로 세웠을 때 정가운데에 있는 중간 기업의 가치는 180억달러, 지난해 순이익은 74600만달러다. 반면 500대 유럽 기업 중 중간 기업의 가치는 80억달러로 미국 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순수익은 44000만달러로 미국 기업의 59% 수준이다.
 
같은 산업의 미국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유럽 기업들은 더 초라해진다. 유니레버의 시가총액은 프록터앤갬블(P&G)5분의3 수준이고, 에어버스는 보잉의 절반 규모에 불과하다. 지멘스는 제너럴일렉트릭(GE)3분의1 크기다. 도이치뱅크의 시가총액은 JP모건체이스의 10% 밖에 되지 않으며, 미국 월마트는 유럽의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테스코나 까르푸보다 10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업 규모가 글로벌 영향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통신회사 AT&T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 등은 자국 내 시장 점유율이 높고 기업 규모도 크지만 해외 시장 운영은 미미하다. 유니레버보다 규모가 훨씬 큰 P&G도 신흥국 시장의 사업만 놓고 보자면 경쟁사인 앵글로더치보다 규모가 작다. 독일의 한 중형 엔지니어링 회사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자본금이 없어도 글로벌 시장에서 특수 제품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유럽 기업이 ‘2으로 밀려난 이유는
 
유럽 기업들은 왜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을까. 우선 유럽 경제가 오랫동안 저성장에 머물며 기업의 성장이 막혔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달러 강세에 힘입어 가치가 높아졌다. 이 같은 명백한 차이 이외에도 유럽기업들은 4가지 부분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첫째, 유럽 기업은 사업 분야를 잘못 선택했다. 유럽은 원자재나 철강 등 오래된 산업에 주력했다. 유럽은 특히 기술 산업에서 역행했다.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규모 있는 IT 기업을 하나도 탄생시키지 못했다. 2000년대까지 유럽은 모바일 기술 산업에서 우세를 펼쳤다. 노키아, 에릭슨, 알카텔 등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왕좌에 앉았던 통신 회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지 못한 채 사라져 갔고, 동년배인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들은 끊임없이 진화해 갔다.
 
둘째, 지역적으로 신흥국 시장 의존도가 너무 컸다. 모건스탠리 은행에 따르면, 유럽 기업 매출의 31%는 신흥국 시장에서 나온다. 미국 기업의 신흥국 시장 매출 의존도는 약 17% 정도다. 개발도상국의 경기가 둔화되면서 유럽 기업은 은행에서부터 양조업체, 명품 패션브랜드까지 전 산업에 걸쳐 타격을 입었다.
 
셋째, 인수·합병(M&A)에 소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금융위기 후, 몸을 사려 인수·합병 거래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전체 글로벌 인수·합병 중 유럽 기업의 매수 규모는 금융위기 전 3분의1 수준에서 금융위기 후 5분의1로 감소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워가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유럽 기업의 경영진은 주주들의 가치를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 유럽 기업은 자기자본 수익률이 낮은데다가 미국 기업만큼 주식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자사주매입 등 주가 안정을 위한 전략에도 소극적이었다. 결국 주주들은 유럽 기업을 외면했고 이는 주식시장에서 유럽 기업의 가치평가가 미국 기업보다 더 낮은 이유 중 하나가 됐다는 설명이다.
 
인수·합병이 돌파구 될 수 있어
 
기업의 규모가 작아지면 쉽게 다른 기업의 매수 대상이 될 수 있다. GE2014년 프랑스 기술력의 상징이었던 알스톰(Alstom)을 인수했다. 이탈리아 타이어 회사인 피렐리(Pirelli)2015년 중국의 캠차이나에게 매각됐다. 캠차이나는 현재 스위스 종자회사 신젠타를 인수하는 중이기도 하다. 지난 3년 동안 영국의 FTSE 100대 기업 중에 20%가 입찰가를 제시 받은 적이 있거나 인수 후보에 올랐다. 그 중에는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와 정유회사 BP, 호텔 체인인 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IHG)도 포함됐다. 미국 기업들은 자국 세법 때문에 해외 자산 획득에 관심이 많아 인수·합병에 적극적인 편이다.
 
유럽 내에서도 인수·합병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국 기업에 대한 국수주의적 견해가 존재해 거래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태가 많다. 2012년 에어버스가 영국의 보안기업 비에이비시스템 인수를 추진했지만 정치적인 논쟁 끝에 좌초됐다. 독일의 증권거래소 뵈르제도 런던증권거래소에 인수 제안을 건넸지만 브렉시트와 함께 물 건너간 상태다. 시멘트회사 간의 연합이 기대됐던 프랑스 라파지와 스위스 홀심의 합병도 곤경에 빠졌다. 지난 20년간 시도된 50개의 대규모 거래 중에서 3분의1이 실현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실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유럽의 국수주의적 본능과 독과점에 엄격한 전통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에너지회사 로열더치셸은 2015년 경쟁사 BG를 인수했다. 몇몇 거물들도 1990년대의 유럽 제국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프랑스 미디어 재벌 비방디(Vivendi)는 이탈리아에 투자하고 있다. 비방디는 미국의 언론 재벌 머독이 소유한 회사들과 넷플릭스를 인수해 미디어 제국을 만들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유럽 기업의 결합 사례는 멀지 않은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범주 안에서 운영됐던 유럽 기업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산업의 민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투자자를 책임지는 기업으로 변해갔다. EU의 단일통화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범유럽 기업을 창조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고, 실제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많은 결과가 있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노피-아벤티스 등 제약회사와, 석유업체 토탈피나엘프(TotalFinaElf), 에어프랑스-케이엘엠 등이 합병으로 탄생했다. BP는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를 인수했고, 비방디는 캐나다 엔터테인먼트사 시그람을, 유니레버는 미국 식품업체 베스트푸드를 사며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과도한 인수·합병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식 거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기업 경쟁의 감소로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렉시트라는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방어적인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한다면 유럽 기업들은 세계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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