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당시 “기름값이 이상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내 정유시장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고유가의 부담이 서민들에게 쏠리자 정유업계를 압박해 기름값을 안정화시키자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통한 사업 참여로 이어졌다. 석유공사와 농협, 도로공사 등이 정유사로부터 대량 구매한 휘발유와 경유를 시중에 저렴한 가격으로 되파는 개념의 알뜰주유소는 지난 2011년 경기도 용인 마평주유소를 1호점으로, 지난해 1168개소까지 세를 넓혀왔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5차 사업자 선정에서 출범 이래 최초로 일부 시장 입찰자 선정에 실패하며 실효성 논란이 폭발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경쟁력을 체감하기 어려운 데다, 정유사 역시 보이지 않는 압력에 마지못해 사업에 참여하는 구조가 문제였다. 알뜰주유소 출범 이래 지속적으로 제도의 실효성과 문제점을 비판해온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를 만나 알뜰주유소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알뜰주유소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아이디어라는 게 문제다. 알뜰주유소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국내 정유사 간 가격경쟁을 유발해 최종 소비자 가격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정유사별로 각자의 유통망을 통해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끼어들어서 석유공사를 통한 대량구매로 가격을 낮추겠다는 건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발상이다. 시장경제를 논하는 정부가 할 생각은 아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유사들을 압박해 대량 구매를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무능 또는 비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덕환 교수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한 시장 가격 통제는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비상식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사진/이덕환 교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이명박정부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름값이 이상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내놓은 방안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무력해진 것도 우습지만, 무엇보다 헌법에 명시된 시장경제와 자유경제 시스템을 무시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당시 회계사를 자처하던 장관은 휘발유 원가를 파악해서 기름값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휘발유는 대표적인 결합상품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각종 부품에 인건비 합치고 적정이윤 합치면 판매가격이 나온다. 하지만 소는 한 마리를 100만원에 사면 갈비도 나오고 등심도 나온다. 여기서 부위별 원가는 알 수가 없다. 갈비와 등심의 원가는 결합개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얼마에 파는지는 시장 동향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다. 석유제품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영학과나 회계학과 1학년이 배우는 회계학의 원론적 개념이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당시 TF팀까지 구성해 1년 이상을 할애하고도 결국 원가를 찾지 못해 유야무야된 뒤 지금까지 왔다. 그런 제도가 정권교체 이후에도 확대를 논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아이러니다.
알뜰주유소 제도 확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정유사별로 고유의 주유소시스템이 있는데 정부가 그 가격보다 더 싼 가격으로 정부에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발상이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효과가 제로에 가깝다고 드러난 비상식적인 제도인데, 산업부가 집착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떤 드러나지 않은 정말 불쾌하고 실망스러운 무엇인가가 감춰져 있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알뜰주유소 제도의 문제는 부족한 실효성이 전부인가.
가장 큰 피해자는 알뜰주유소 정책에 참여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다. 사업자로서의 참여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출범 당시 치열한 주유소 시스템에서 경쟁 중인 업자들을 보조금으로 억지로 끌어다 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출범 당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에게 지원되던 세제 혜택은 현재 사라진 상태다.)
그 다음이 소비자들의 피해다. 알뜰주유소가 싸다는 환상을 갖게 끊임없이 주입해왔지만 실상은 다르다. 알뜰주유소가 싸다는 정부의 홍보 이면을 보면 알뜰주유소는 대부분이 셀프다. 주유원이 없어서 인건비가 적고, 대부분이 도심에서 벗어나 임대료도 싸다. 기름값은 당연히 도심의 풀 서비스 주유소보다 쌀 수밖에 없다. 비교 자체가 잘못된 거다.
농협과 도로공사의 피해도 간과할 수 없다. 농협은 농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공조직인데 도로에 주유소를 만들어놓고 도시민을 위한 주유 사업을 왜 농협이 하나. 농협이 비싼 유조차를 사서 그걸 운영하면서 손실을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고유 영역을 가진 공기업을 압박해서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이 주유소 사업을 하게 만든다는 건 범죄 수준이다.
도로공사 역시 제대로 된 임대료를 받고 주유소 부지를 임대해줘도 되는데 특별한 유형의 업자를 들여 싼값에 주유소 부지를 내줘야 한다. 석유공사는 유전 개발이라는 기본 취지를 가진 공공기관이다.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심판해야 하는 핵심 임무를 지닌 공사가 휘발유와 경유 장사를 하고 있는 꼴이다.
알뜰주유소는 고유가 시대에 태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배럴당 5~10달러씩 가격이 뛸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대량구매를 통해 비축해서 팔면 환영 받는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처럼 지속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대량구매는 손해로 직결된다. 그 손해 역시 석유공사와 농협, 도로공사가 감당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대부분 셀프주유소 형태에다, 임대료가 싼 도심 외곽에 위치한 알뜰주유소와 도심에 위치한 풀서비스 주유소와의 가격 비교를 통해 알뜰주유소가 싸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잘못된 비교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하님시내 한 알뜰주유소 전경. 사진/뉴시스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선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류세는 분명 적정수준으로 인하하고 조정돼야 한다. 지난 정권 인수위원회가 가장 심각하게 다뤘던 사안 중 하나가 가짜기름이다. 특히 가짜경유의 경우 주유소를 7번 가면 그 중 1번은 가짜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경유 유통량의 13%정도가 가짜였다는 이야기다. 유류세 전체 규모를 24조원으로 보는데 대략 3조에 가까운 정도가 누수됐던 셈이다. 최근만 해도 가짜기름 유통과 관련한 뉴스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문제는 가짜기름으로 가장 큰 의혹을 받는 곳이 알뜰 주유소라는 점이다. 정유사가 직접 관리하는 폴 주유소들은 품질 관리에 민감해서 가짜기름이 유입될 가능성이 적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인식이 있는 알뜰주유소가 의혹을 사게 된다. 힘 없는 알뜰주유소 사업자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기름값을 안정화하고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산업부가 석유시장 관리에서 손을 떼야 한다. 이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몫이다. 산업부의 존재 이유는 산업 진흥과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정책 수립, 에너지의 원활한 수급에 있다. 공정거래는 공정위에 맡기고 원유를 값싸게 들여와 소비자들이 실질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정책에 신경써야 한다. 국내 유가는 싱가폴 국제 석유시장과 연동된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행해지는지 감시하는 것 역시 산업부가 할 일이다. 국제시장 가격이 올라가면 당연히 그보다 싸게 팔 수 없다. 이는 소비자들도 인정한다. 기름값이 올랐을 땐 국민들이 절약하고 효율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계도해야지, 마치 정유사의 담합을 기정사실처럼 못 박고 여론을 몰아갈 필요는 없다. 국제시장에서 100원인 걸 50원에 팔라고 강요하는 건 도둑놈 심보지 않나.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