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구조적 적폐에 한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썩어도 이렇게 썩었었단 말이냐”는 통분과 함께 민주개혁진영이 최소 2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공감한다. 다만, 그런 얘기들이 감상적 영탄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영미~~” 열풍이 끝나자 마자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는 얘기들이 다시 커지고 있다.
우선 당장 북한 김영철 통일선전부장의 방남을 두고 구태의연한 시비가 지속되고 있다. 수구부패세력이 이미 용도폐기된 색깔론에 아직도 매달려 발버둥치는 것이지만, 여전히 하나의 ‘정치적 무리’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1/3이 넘는 국회 의석을 통해 ‘무엇을 못 하게 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짧게는 문재인정부의 남은 임기, 길게는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 토대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 올림픽 이후 미국의 대 한반도 강경책 선회조짐에 현 정부가 주도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의 확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올림픽폐막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대북 해상봉쇄 수준인 초강경 해상차단을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함께 평창폐막식에 참석한 미국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분적 타격(코피 작전)이 아닌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대북 예방타격, 즉 ‘거친 결정(tough decision)’을 내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고강도 무역압박과 관세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정권의 강경파를 상대로 ‘전쟁불가’와 ‘대등한 한-미관계’라는 우리의 국익을 관철시킬 대내적 역량 결집의 시험대가 이번 지방선거인 셈이다.
민주당에 한 가지만 주문하고자 한다. 우선 당장은 인지도가 높아 솔깃해지는 각지의 토호들, 구 시대의 상징인 토호들과 과감히 결별하라. 정권교체 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부터 기존 정치문법과 결별해야 ‘20년 집권’의 토대가 가능해진다. 듣기로 대구-경북에서는 엊그제까지 자유한국당에 몸 담고 있던 사람을 지명도나 현지 민심을 들어 민주당으로 입당시켜 출마시키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TK지역 특수상황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고, 선거전략상 필요한 ‘기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탐대실이다. 원칙없는 수확은 소 전투의 승리는 몰라도, 개혁 동력을 창출하지는 못한다. 호남과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이라는 대의와 원칙을 지키면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 촛불 영향력과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도를 감안할 때 토호들과 결별하고도 승리 가능성은 높다. 시민들이 어떤 정치를 갈망하는지는 촛불혁명을 통해 똑똑히 확인했다.
그 간의 정치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말로는 새 인물을 외치면서도, 결국은 이전 몇 차례 선거에서 벽보에 얼굴 붙였거나, 얼굴 붙이려 뛰어다녔던 사람들 위주로 ‘니 사람 내 사람’ 편갈라 공천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가 그 모양이었다. 상갓집 문상 다니고, 개업집에 화분 보내고, 조기축구회에 얼굴 내미는 걸 정치로 알고 행한 사람들로부터 정치를 독립시켜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해온 정치의 결과와 악순환의 고리를 너무 익히 보아왔다. 언제까지 상갓집 문상정치에 목 맬 것인가. 그건 진작 끝났어야 할 천수답 농사다. ‘국회의원-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구조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 점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의 각성과 기득권 포기가 절실하다. 과감한 정치실험을 통해 민주당이 전국적 정당득표율 50%에 육박한다면 말 그대로 정치혁명이다. 촛불혁명에 버금가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촛불을 능가하는 정치혁명이다. 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 류의 수구부패세력이 정치적 기반을 잃는 것은 물론, 정부수립 이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판의 가치관과 우선 순위가 바뀌는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20대 국회 남은 임기를 운영하면 된다. ‘공왈 맹왈’의 당연한 소리여서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답은 항상 그 공왈 맹왈, ‘기본’에 있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고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이번이 구태 정치를 끝낼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다. 토호들과 결별하고, 인적 자원 교체를 민주당이 주도하라. 이 또한 촛불시민의 명령이다.
이강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