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박영숙 부부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소장유물 4241건(5129점)을 서울시에 무상 기증한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들 부부가 기증하는 5000여점에는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자수병풍, 보자기 등 1000여점 비롯해 자수공예 및 복식 등 각종 직물공예품, 장신구, 함, 바늘과 같은 침선구를 망라한다. 국가지정 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 3건도 포함됐다.
기증 유물 일체는 서울시가 옛 풍문여고에 건립 중인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오는 2020년 5월부터 상설·특별전시로 공개된다. 기존 한국자수박물관이 전시공간 협소라는 물리적 한계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전시를 시민 누구나 만나볼 수 있게 됐다.
한국자수박물관은 허동화 관장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을 자처하며,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자수라는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며 국내외에 명성을 떨쳐왔다. 박물관 설립자이자 허 관장의 부인인 박영숙 원장은 치과를 운영하며 경제적인 뒷받침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기증은 현재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허동화 관장이 국가사회 공헌에 뜻을 두고 서울시에 제안해 이뤄지게 됐다. 허 관장은 “유물 기증을 계기로 그 반백년 감동의 역사가 서울공예박물관을 통해 계승되고, 다른 유물 소장가들에게는 기증의 선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자수 유물 기증을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례로 보고, 향후 우리나라 자수공예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증 유물 중 하나인 보물 제653호 ‘자수사계분경도’는 꽃과 나비, 분재 등을 4폭에 수놓은 병풍으로 제작 시기가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수집 당시 터키 대사 부인이 선점해 외국으로 반출될 상황에 놓였던 것을 인사동 고미술상을 설득한 끝에 손에 넣은 일화로 유명하다.
조선후기 왕실 내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민속문화재 제41호 ‘운봉수향낭’, 제42호 ‘일월수다라니주머니’, 제43호 ‘오조룡왕비보’도 기증의 가치를 높인 유물들로 주목된다. 허 관장에게 ‘보자기 할배’라는 친근한 별명을 갖게 한 각종 조각보 1000여점의 경우 옛 여인들이 간직했던 미적 감각과 실용적인 슬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수집했다.
한편, 매년 5월18일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1978년 박물관의 사회적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선포한 ‘세계박물관의 날’이다.
허동화·박영숙 부부가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하는 국가민속문화재 제43호 오조룡왕비보. 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