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해곤 기자] 정부가 38년 만에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통해 대기업 규제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한다. 사익편취·총수 지배력 확대 차단 등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 의지와 현 정부의 공정경제 구축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경쟁법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기 위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일부 폐지하고 검찰에 담함행위 조사 등의 권한을 부여한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 따라 기업 활동 위축과 법적 분쟁이 남발할 것이라는 우려는 숙제로 남았다.
대기업 사익추구화 규제 강화…사각지대 없애고 대상 확대
먼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상장사(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 소속회사) 총수일가의 보유 지분율 기준이 현행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에서 20%로 일원화된다. 또한 이들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대상에 포함된다.
이 같은 조치는 총수일가 소유 지분 20~30% 미만의 상장사가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수일가 지분율 20%에서 30% 사이 상장사의 평균 내부거래 규모는 지난해 기준 3000억원으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의 700억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율 29~30%인 상장사의 평균 내부거래 규모는 8000억 원에 달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사익편취 규제 대상은 현재의 2배 이상인 최소 441개 기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KCC건설, 태영건설 등이 신규로 규제대상에 편입될 예정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정 특별위원회가 권고했던 상호출자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행사를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한하자는 권고안을 단계적으로 수용키로 했다. 현행 금융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합병, 임원선임 등 예외적 경우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까지 가능하다. 공정위는 재정안에서 이 특위의 권고안을 수용하되 2년간 시행을 유예하고 3년에 걸쳐 5%씩 단계적으로 행사 한도를 축소키로 했다. 금융보험사에 대해선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를 제외하고 계열사 합병 때 의결권 행사를 금지키로 했다.
이를 통해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및 사익편취, 계열사의 부당 지원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금융보험사와 그 계열사 다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들이 보유한 자산 대부분이 계열사 주식이며 그 구성 내역을 보면 총수 2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 그룹의 핵심회사 위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것은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나 총수 2세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지분율 요건을 기존 상장사 20%·비상장사 40%에서 상장사 30%·비상장사 50%로 상향하는 것도 대기업 규제 강화의 일환이다. 공정위는 이 기준을 신규 설립·전환 지주회사로 한정했지만 이에 따른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를 앞으로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특위가 권고했던 금융보험사만의 의결권 행사한도 5% 제한은 공정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규제효과가 크기 않고 규제강화에 대한 논란만 확산될 우려가 있어 현행 체제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또 당초 특위의 권고안을 통해 사익편취 대상에 포함됐던 해외계열사에 대한 규제도 법 집행의 효율성을 위해 공시의무만 부과하고 현황 파악에 주력할 방침이다.
전속고발권도 폐지…기업활동 위축 우려도
공정위는 그간 유지됐던 전속고발권도 부분 폐지했다. 전속고발권은 1980년 기업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 무분별한 고발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번 개정안은 이 전속고발권을 위법성이 중대하고 소비자 피해가 큰 가격담합·입찰담합 등 '경성담합'의 경우 공정위 고발 없이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개정한다. 앞서 공정위는 이와 별도로 '유통3법(가맹·유통·대리점)'과 표시광고법에서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 및 하도급법에서 기술유용에 한해 전속고발권을 부분폐지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속고발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정위의 고발권 독점으로 인해 일반 국민과 소비자의 권리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를 폐지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정부는 경제민주화 국정과제의 하나로 공정거래법상 행정, 민사, 형사적 법집행수단을 종합적으로 정비하고, 전속고발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대기업 규제 강화 방향을 두고 기업 활동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감안할 때 사익편취 대상 확대는 대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속고발권의 폐지로 공정위의 눈치만 보던 기업들이 이제 검찰의 눈치도 봐야 한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았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이 대기업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 업계 우려가 크다"며 "우리 기업이 글로벌화 된 지금은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규제해야 한다는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