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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마녀재판에 마녀는 없었다
입력 : 2018-10-23 오전 6:00:00
마녀재판이 성행한 시기는 중세 암흑기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혁명이 시작되고 계몽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이성의 시대였다. 기록에 따르면 17세기 중반, 독일에서는 10년 동안 두 살 어린아이를 포함해 1000여 명이 마녀로 몰려 처형됐다. 종교적 광기가 마녀재판의 원인이라는 해석도 반만 맞다. 가톨릭 강경파들이 마녀를 가장 맹렬하게 박해한 측면도 있지만, 종교인은 물론 정치가, 행정가, 판사 등 당시 지식인이 체계적으로 마녀재판을 주도했다.   
 
마녀재판은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단 마녀로 지목되면 마녀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고문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마녀라고 인정하면 전 재산을 몰수하고 화형에 처했다. 증거는 없다. 증거라고 제시한 물건이나 표식은 대부분 조작됐다. 마녀 감별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에 던져 살아 나오면 마녀, 죽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불 위를 걷게 하고 살아 나오면 마녀, 죽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간주했다. 이처럼 마녀로 지목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다시 말하지만, 마녀재판은 고대에도 있었고, 아시아나 남미 지역에서도 흔적이 발견되지만,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성행했다. 아이작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통해 근대 역학과 천문학을 확립한 시기였다. 지구와 사과, 지구와 달, 태양과 목성 사이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힌 때였다. 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결합해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로 시작된 과학혁명이 화약고처럼 폭발했다. 그런 때 마녀사냥, 마녀재판이 횡행했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천문학자 케플러의 모친까지 마녀로 몰렸다. 
 
마녀재판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연구하며 책 <마녀>를 펴내기도 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녀재판은 비정상적인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문명 내부에서 오랜 기간 준비해 온 필연적 귀결이요 발명품이었다. (…)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에게는 미국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따지고 보면 마녀재판의 정점은 20세기였는지도 모른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끝나고 미국에 불어 닥친 매카시 열풍이 그랬다. “나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내 손에는 그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1950년 2월, 이렇게 주장하며 매카시 상원의원이 흔든 서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로젠버그 부부가 원폭 기밀을 옛 소련에 넘긴 스파이라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전기의자에서 집행됐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원폭 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오펜하이머마저 간첩으로 몰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을 보면 마녀재판이 떠오른다.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지지 여부와 호불호는 개인 자유다. 좋아하는 이유도, 싫어하는 이유도 각자 판단할 몫이다. 유·무죄는 다르다. 누군가 좋아한다고 저지른 죄를 무죄라고 할 수 없듯, 누군가 싫어한다고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유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재명 논란은 이 모든 게 뒤섞여 있다. 개인적 호불호와 사법적 유·무죄의 경계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2010년 처음 불거진 ‘여배우 스캔들’이 8년째 갑론을박 중이다. 최근에는 “이 지사의 특정 신체 부위에 까만 큰 점이 있다”는 녹취록이 SNS에 퍼지기도 했다. 녹취록이 어떤 과정으로, 누가 유포했는지 알 수 없으나 녹취록의 그들은 이것을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스모킹 건’으로 봤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지사가 신체검증을 받고, 의료진도 “녹취록에서 언급된 부위에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동그란 점이나 레이저 흔적, 수술 봉합, 절제 흔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제 녹취록은 이 지사의 스모킹 건이 되는 분위기다. 
 
마녀재판이 횡행하던 시절, 마녀로 지목된 희생자는 체모를 깎이는 수모를 당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은밀한 부위를 검사받기도 했다. 악마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명분이었다. 흔적이 없어도 결과는 같았다. 어떤 방법으로든 마녀라 결론 내리고 화형에 처했다. 그들이 찾는 마녀는 없었다. 마녀사냥에 눈 붉히고 칼춤 춘 자신들이 오히려 마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든 마녀재판식으로 몰아가다 스스로 ‘마녀’가 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좀 차분해질 때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blade31@daum.net)
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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