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개별 기업이 아닌 대한민국 해운 재건 주역으로서 국가 경제 기여와 경쟁력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983년 아세아상선에서 현대상선으로 사명을 변경한 이래 37년 만에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에이치엠엠(HMM)’의 각오가 배재훈 사장의 지난 27일 주주총회 발언에 오롯이 담겼다. HMM은 주총에서 해당 안건을 승인하며 2017년부터 준비해 온 사명 변경 작업을 마무리했다.
현대상선의 영문 명칭인 ‘Hyundai Merchant Marine’의 약호를 딴 데에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두에 서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해외에선 이미 HMM으로 통용되고 현재 운항 중인 대다수 선박에도 표기돼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HMM의 무기는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 정회원 가입과 다음달 부터 아시아~유럽 항로에 순차 투입할 2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이다. 정부가 2016~2017년 한진해운 파산사태 이후 뒤늦게 해운산업 중요성을 절감하고 2018년부터 추진해 온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현대상선이 오는 4월부터 투입할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2만4000개를 선적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이다. 사진/현대상선
해운재건 추진 당시 이미 글로벌 선사들은 여러 형태의 운항 동맹을 맺으며 합종연횡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선 각각 자국 대표 해운사들을 합병해 ‘ONE’과 ‘COSCO’라는 대형 선사를 출범, 전통 해운 강국인 유럽 선사들과 대적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던 참이었다. 정부도 현대상선과 SM상선 통합 등 대형화를 시도했지만 좌절됐다. 대신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한 ‘메가 컨테이너선’ 마련과 이에 기반한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합류가 추진됐다.
내년부터는 1만5000TEU급 8척을 미주 항로에 추가 투입한다. 메가컨테이너선은 해운재건을 위해 설립된 해양진흥공사와, 산업은행이 신용 공여 등을 통해 발주자금의 90%를 지원했다. 이 사업 성공에 국가해운재건이 달린 셈이다. HMM이 사명까지 변경하며 올해를 각별하게 출발하는 이유다.
그러나 오는 4월 동맹 서비스 시작과 초대형선 투입을 앞두고 ‘순항’이 유력했던 HMM 앞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해운시장 타격은 ‘암초’다. 메가컨선은 화물을 최대로 채웠을 때 얻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전반적인 물동량 감소로 당장 화물을 충분히 끌어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와 관련해 HMM 관계자는 “실제 회사는 4000TEU 정도만 채우면 되고 나머지는 동맹 회원사에 각 할당해 월세 격의 이용료를 받는다”고 전했다. 독일 하팍로이드와 일본 ONE, 대만 양밍해운이 함께 화물을 채운다는 설명이다.
다만 코로나 여파가 얼마나 번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게 문제다.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는 올해 컨테이너 물동량 손실이 1700만TEU에 달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를 반영한 듯 배 사장도 주총에서 올해 목표하던 ‘흑자전환’ 언급을 삼갔다. 대신 “새로운 이름으로 대한민국 해운재건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전속 항진 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대강당에서 열린 '제 44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최서윤 기자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