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보자. 전국에 코로나19가 퍼진 게 이미 2월이다. 감염 확산을 막고자 회식·모임·외식 등이 줄어들고 개학이 미뤄졌으며 당연히 가장 큰 피해자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이 꼽혔다.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휴업에 확진자 발생까지 정말 풍전등화다.
3월 초엔 김경수 도지사가 전 국민 100만원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이재명 도지사도 재난기본소득에 힘을 보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위소득 100%에 재난긴급생활비 60만원 지급을 제안했다. 이러한 외침에도 1차 추경에선 재난기본소득 혹은 재난긴급생활비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각 지자체는 저마다 지원책을 마련했다.
여론이 달라진 것은 공교롭게도 1차 추경이 막 이뤄지던 즈음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국민에 2주 내 10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고 이 소식은 미국을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큰 나라’라 여기는 이 곳에도 전달됐다. 포퓰리즘이라며 현금복지만은 안 된다던 여론은 큰 나라 미국이 결정하자 마치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듯이 현금 지급을 꺼내들었다.
처음에는 하위소득 70% 최대 100만원, 수단은 지역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였다. 마지막 변수는 총선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할 것 없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외쳤고 지원금액과 지원대상이 선심쓰듯 확대됐다. 총선은 여당의 승리로 끝났고, 최대 100만원, 전 국민 대상으로 몸집을 키워 2차 추경을 통과했다.
이미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는 시점에 갖는 의문 중 하나는 신용카드가 왜 끼어들게 됐는가다. 현재 재난지원금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신용카드다. 11일부터 15일까지 5일만에 7조원 가까이 신청했다. 이미 전체 14조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16일부터 5부제가 풀린 상황에서 신용카드 신청액은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행안부는 아예 신용카드 신청을 장려하고 있다. 9개 신용카드사와 협약까지 체결한 행안부는 차관까지 나서서 다른 신청수단말고 신용카드로 재난지원금을 사용하라고 홍보했다. 신용·체크카드는 11일부터, 지역사랑상품권·선불카드는 18일부터 ‘시간차 접수’를 받는다. 초기 홍보가 신용카드에 쏠리면서 사람들의 신청은 더욱 몰리는 추세다.
신용카드는 분명 장점이 있다. 가장 많은 인원이 가입해 있어 이미 결제망이 깔린 상황에서 빠른 시일 내에 지급부터 사용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코로나19로 소비 진작 효과가 시급한 시점에 신용카드를 장려하는 마음까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비자는 당장 편할지 몰라도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신용카드를 수수료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상인단체들이 10년 넘게 수수료 인하운동을 벌이고, 수수료를 안 받는 지역사랑상품권이 만들어졌겠는가. 14조원을 뿌려도 10조원을 신용카드로 신청한다면 800억원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아닌 신용카드사에게 수수료로 돌아간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선호한다. 행안부와 어긋나는 지점이다.
조금 더 신속하게 3월, 아니 4월에만 지급이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정책적 고려과정만 충분했어도 가구주에게만 지급하고, ‘억지 기부’를 유도하고, 주민등록지에서만 사용 가능해 불러오는 불만을 사전에 대비해 설계했을 수 있다. 신용카드로 과도하게 장려하지 않았어도 됐을 일이다.
결국 재난지원금을 14조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지급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돈을 받아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소비활동이 이뤄져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이다. 재난지원금은 최종적으로 내수경제의 기반인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재난지원금인가. 지금이라도 정책결정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