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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숲속의 악마가 되려하는가
입력 : 2020-06-22 오전 6:00:00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가 평등하며 누구나 다 생명권, 자유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13개 주 영국 식민지들이 모여 발표하던 독립선언서 내용이다. 홍차 탓에 빚어진 전쟁치고는 인류최초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미국탄생의 배경이기도 하다.
 
식민지 개척에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이용했고, 300년 넘게 핍박과 억압 속에서 신음하던 흑인노예의 후손 중 미 대법원의 첫 흑인 법학자 서굿 마셜이 있다.
 
교육의 평등은 인정하면서도 인종분리를 주창하던 백인의 오만에 한 획을 그은 ‘브라운 사건(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 1954)’은 마셜 변호사를 흑인 최초 연방대법관에 오르게 한 미국 역사의 유명 판결이다.
 
1951년 캔자스주 토피카에 살았던 린다 브라운의 부친 올리버는 딸을 집 근처에 있는 섬너 초등학교에 보내려했다. 하지만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 학생만 다니는 학교 측의 입학 거부는 ‘아동 흑백분리교육’에 대한 소송으로 이어졌다.
 
서굿 마샬의 변호사 시절을 다룬 길버트 킹의 저서 ‘숲속의 악마’에는 백인들의 편파적 마녀사냥이 잘 묘사돼 있다. 그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4일 후인 1993년 1월 24일 사망했다.
 
그로부터 25년 후 공교롭게도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막말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율 1위’로 취임하면서 진보적 사회 변화에 위기를 맞던 보수파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듯 했다.
 
하지만 보수가 원한 결단성의 착각은 인종 분열의 과단성으로 브라운 사건의 시작인 1951년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오히려 배타적 고립, 맹목적 애국주의 등을 넘어선 증오·혐오의 대명사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난과 규탄만 거세지는 꼴이 됐다.
 
보다 못해 ‘인종차별 대항’을 촉구하고 나선 이들은 유럽의회다. 백인 경찰관이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8분 넘게 짓눌러 목숨을 잃은 사건을 거론하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공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전 세계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목소리는 ‘역사 청산’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어릴 적 위인전을 통해 본 15세기의 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20세기 인도 식민통치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까지 동상 철거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성난 시위대들은 17세기 흑인노예무역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강물에 내던졌고 콩고 식민 통치의 상징인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은 붉은 페인트로 주홍글씨를 새겼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워싱턴D.C의 남부연합 장군 동상에는 불을 붙였다. 남북 전쟁 당시 남군의 장군으로 활동한 알버트 파이크 장군의 동상도 철거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성으로 꼽히는 조지 클루니도 인종차별을 전염병에 비유하는 등 미국 법 집행, 사법 제도, 정치 리더십의 변화를 촉구했다.
 
불안한 사회 속에 증오와 혐오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의 욕망은 괴질과 같이 무섭다는 걸 안다. ‘인종의 순수성’을 주창하던 나치당의 히틀러가 그랬다.
 
게르만 족이 우월하다며 전체주의를 향한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다. 압축 성장을 일궈낸 우리나라도 5·18 시민학살처럼 ‘권력독식’의 뒤틀린 현실을 경험해왔다.
 
‘이념’으로 편 가르던 역사 문제는 촛불염원 이후 ‘개념’ 문제였다는 상식을 깨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잔존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논쟁과 지역갈등, 그리고 사과와 반성이 없는 과거사 문제는 인종분리를 주창하던 백인우월의 오만, 나치의 욕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타인을 배척하고 끼리끼리 편을 만드는 소속감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문명과 자기 성찰로 통제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은 21세기 인류의 과제를 좀먹는 ‘숲속의 악마’가 될 수 있다.
 
이규하 정책데스크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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