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농협은행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펀드 판매 관련 과징금 조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OEM펀드는 펀드 판매사의 명령·요청 등에 따라 만든 펀드로,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그동안 운용사들만 규제 대상이었지 판매사가 직접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OEM 펀드 판매로 은행이 제재를 받은 것은 농협은행이 처음이다.
제재 과정에서 농협은행의 반발을 감안하면 이의제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금융투자상품을 불문하고 판매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다른 은행들도 긴장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금융당국의 20억원 규모 과징금 부과 조치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OEM 펀드에 대한 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으로 농협은행에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렸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와 관련해 금융위의 결정을 존중해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향후 금융소비자 보호에 더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과징금 납부 기한은 오는 9월7일까지다.
농협은행이 금융당국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펀드 제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지난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OEM 방식으로 펀드를 주문하고 사모펀드로 쪼개 팔아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했다고 봤다.
제재 과정에서 농협은행의 반발도 있었다. 은행 측은 펀드 판매사가 집합투자증권을 판매하면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사안도 아니고 법률 적용상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농협은행은 결국 이의제기나 행정소송에 나서는 것보다 과징금 조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금융당국이 하반기부터 현장검사를 재개한 마당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책정된 과징금 100억원 보다 최종액이 상당히 낮아진 것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펀드 판매 관련 농협은행 제재를 보는 금융권의 긴장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OEM 펀드 등 다른 상품 판매와 관련한 판매사 책임 및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시중은행들이 펀드상품 개발부터 운용사들과 협력하는 OEM 방식의 펀드 판매를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펀드 판매의 주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은행들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OEM펀드와 유사한 방식의 상품이 일부 존재하는데 농협은행 사례와 같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