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경찰이 인터넷에 올린 '범행 가담자 모집' 게시글…대법 "위법수사 아니야"
입력 : 2020-07-26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경찰 수사협조자가 제공한 기회에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실제로 범행이 있었고 범인이 범행 방법이나 수익분배 비율 등을 제안하는 등 적극 가담했다면, 위법한 함정수사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되는 다른 사람의 체크카드를 보관하고 수익을 얻기로 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 인정과 함께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할 사람을 모집하는 인터넷 광고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제안자의 지시대로 실제 범행을 실행한 점, 범행 대가로 받기로 한 수수료율을 높이기 위해 협의한 점 등을 고려하면 범행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일부 개입했더라도 이는 이미 범의를 가지고 있는 피고인에게 단순히 범행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해 위법한 함정수사로 볼 수 없고,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옳다"고 판결했다.
 
김씨는 2019년 9월 '죽을 용기로 일하실 분, 밑바닥인 분들 오세요'라는 이름이 달린 모 인터넷 카페에 지속적으로 접촉해오다가 '출집·장집'을 구한다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출집'은 보이스피싱 대포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을 인출해 범죄조직에 송금하는 인출책을, '장집'은 가로챈 돈을 입금받을 대포계좌와 이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수집하는 모집책을 각각 가리키는 범죄 용어다.
 
그러나 이 게시글은 경찰 수사협조자인 A씨가 범인 검거 목적으로 경찰이 의뢰를 받아 올려 놓은 글이었다.
 
김씨는 댓글로 자신의 텔레그렘 ID를 남긴 뒤 접촉해 온 A씨로부터 작업 수수료율로 12~15%를 제안받았으나 18~20%는 줘야 한다고 제안해 결국 15%로 결정했다. 실제 범행 과정에서는 A씨가 체크카드를 넘기기로 한 장소를 갑자기 변경해 다른 곳에 두도록 하기도 했다. 
 
김씨는 결국 경찰에 검거됐는데, A씨가 제안한 범행 외에 또 다른 범죄자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고 같은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심은 김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김씨는 "범행할 마음이 없었는데 A씨에게 속아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면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이용됐기 때문에 무죄"라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에 김씨가 상고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함정수사'를 명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법원은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 199조 1항의 해석상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법원은 그러나 이 때에도 이미 범죄의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하는 정도의 '기회제공형수사'만 적법한 것으로 인정하고, 범죄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범죄의사를 유발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범의유발형수사'는 위법하다고 보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