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거침없이 내달리던 국내 증시가 멈춰 섰다. 전일 미국 증시의 급락에 놀란 분위기다. 과열 양상으로 치닫던 증시가 꼭지를 찍고 본격적인 하락을 시작한 것인지, 과열을 식히는 조정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적인 시장지표들은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4일 코스피는 2.64% 급락한 2332.68포인트로 출발해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2.13% 하락한 5만5200원에서 장을 시작했고, NAVER와 LG화학도 각각 32만2500원(-4.87%), 73만4000원(-4.43%)에서 거래를 시작하는 등 대부분의 종목들이 개장 초부터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낙폭을 줄이는 모습이지만 좀처럼 약세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장가 하락폭은 코스피보다 더 큰 –3.75%였다.
시장의 하락을 이끄는 주체는 외국인과 기관이다.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수로 출발했던 외국인은 10여분만에 순매도로 돌아선 후로 매도세를 키워 12시 현재 2400억원을 넘겼다.
기관도 마찬가지. 금융투자, 투신, 연기금, 사모펀드, 기타법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순매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외국인이 코스닥에서 순매수하는 듯 했으나 10시가 넘어가면서 순매도로 전환했다. 이날 오전 증시에서는 오직 개인만 주식을 사고 있는 셈이다.
<출처: 미래에셋대우>
이와 같은 하락세는 우리시간으로 새벽에 마감한 미국 증시의 급락에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시에서는 하루 전 1만2000선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썼던 나스닥지수가 –4.96% 급락하며 1만1458포인트로 주저앉았고, 다우산업지수는 –2.78%, S&P500도 –3.51%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애플(–8%), 마이크로소프트(-6.19%), 테슬라(-9.02%) 등 대부분이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현재 야간 선물거래에서도 각 지수들이 추가 하락을 이어가고 있어 오늘밤 미국 증시도 하락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날의 하락에 대한 증권업계의 해석은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보는 의견과,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란 시각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강세장에 따르는 조정이란 시각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동성 공급은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인프라 투자 등도 본격화될 예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반면 그동안 증시 과열을 경고했던 이들은 현재 주가 수준이 비이성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중엔 지속될 수 없는 강세장에서 갑자기 증시가 무너지는 현상인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를 거론한 전문가도 있다. RW어드바이저리를 세운 전략가 론 윌리엄은 CNBC에서 “자산가격이 민스키 모멘트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런 붕괴는 아니라도, 현재 증시가 과열돼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는 버핏지수다. 버핏지수는 증시 전체 시가총액을 국민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 수준을 보여준다. 현재 버핏지수는 2000년 초 IT버블 당시를 넘어선 상황이다. 반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업들의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버핏지수도 IT버블 당시를 넘어 새로운 고점을 만들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두 번째는 CNN머니가 집계하는 공포와 탐욕지수(Fear & Greed Index)다.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1~100로 나누어 이를 극도의 공포, 공포, 탐욕, 극도의 탐욕 구간으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하루 전만 해도 77로 극한의 탐욕 구간에 있다가 이날 주가 급락으로 58(탐욕)까지 내려왔다. 이 지수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도 옵션거래와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시장이 탐욕구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는 변동성지수(VIX)다. 이날 26.5에서 33.6으로 20% 이상 급등했는데, 사실 최근 일주일간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쓰는 등 강세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VIX는 하락하지 않았다. 시장은 변동성이 커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네 번째는 주택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케이스-쉴러지수(S&P/Case-Shiller Index)다. 이중 20개 대도시 주택가격을 종합한 지수는 2012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현재 223대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부동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을 당시, 그러니까 위기가 터지기 직전 2006년, 2007년 당시 고점은 204~206 수준이었다. 이를 주택가격의 정상화화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아진 건 확실하다. 이 지수를 만든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 또한 최근 대도시 주택가격 하락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이밖에도 경기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용지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부정적이다. 2일 전미고용보고서에 따르면 8월 민간부문 고용은 42만8000명 증가했다. 이는 월가의 전망치 117만명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반면 올해 6월 500선부터 상승해 한달만에 2000 부근까지 올랐던 벌크선운임지수(BDI)는 현재 1500선 아래로 내려온 상태지만, 연초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이어서 다른 지표들과는 온도차가 있다.
똑같은 지표를 참고해도 각자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추가 상승 또는 하락에 대한 전망과 상관없이 주가가 실물과는 동떨어져 과도하게 많이 올랐다는 지적만큼은 공감하는 분위기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주식 비중 100%인 투자자라면 현금비중을 어느 정도 늘려 놓는 것이 좋겠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