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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서

(인터뷰)"북, 9·19군사합의 때 GP 160여개 전부 철수하겠다고 했었다"

책 <평화의 힘> 펴낸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 "외교·안보, 정부 막론하고 이어달리기 해야"

2023-07-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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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연세대학교 연희관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문재인정부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산파이기도 합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빛나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빛이 바래기는 했으나, 그 성과와 한계는 하나하나 복기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신간 <평화의 힘: 문재인 정부의 용기와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기록>은 이 작업을 위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가 국제정치 전문가이자, 문재인정부 내내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평화기획비서관-외교부 1차관으로 일하면서 남북관계, 한미관계, 2018년 9·19 군사합의 타결, 비핵화 협상 현장에 직접 참여한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문재인 정부의 평화관, 평화를 위한 쉼 없는 노력, 성과와 한계, 성찰 등에 관해 언젠가 제가 회고록을 쓴다면 담고 싶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추천사를 쓴 것도 그런 배경입니다.
 
지난 3일 연세대 연희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9·19군사합의 과정에서 북한이 매우 적극적이었다며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160여개 전부를 다 철수하겠다고 했다”는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에는 단계적 철수가 낫겠다는 판단과 국내적 수용성을 감안해 이 제안을 거부했는데, 솔직히 가장 후회스러운 부분”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은 문답 전문입니다.
 
최종건 교수가 낸 책 <평화의 힘> 표지. (제공=출판사 메디치)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공인한 반국가세력의 핵심이 된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이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의 언어는 포용적이고 보편적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언어는 갈라치기입니다. 대통령답지 않습니다. 원한과 증오를 증폭시키는 언어를 써도 될까요? 국제사회는 어떻게 볼까요?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대통령에 대한 매력도는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재를 풀어달라고 한 적도 없고, 종전선언이 유엔사를 해체한다고요? 거짓 뉴스지요. 
 
-문 전 대통령께서 오늘(3일) SNS에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올렸더군요.
=영광이지요. 문 대통령께서 올리신 글은 그분의 평소 생각 그대로였습니다. 대통령님과 제 책의 메시지는 정부를 막론하고 ‘이어달리기’를 하자는 겁니다. 평화는 특정 진영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모두 공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최종건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연세대학교 연희관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한반도 평화 구축에는 용기 필요…현 정부에 그런 용기 있는지 궁금”
 
-이 책의 부제가 '문재인 정부의 용기와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기록'입니다. '용기'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대통령님은 "작심하고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책에도 언급돼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도 작심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북한에 보냈을 때, 노태우 대통령도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가 그런 순간들일 겁니다. 북한과 갈등하고 적대한 것이 국내 정치적으로는 득이 되는 선택입니다. 북한과 협상하고 화해하자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공직을 경험한 뒤에 학교로 돌아오니 한반도 평화 구축은 용기 있는 대통령이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 정부가 용기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문재인정부의 급격한 군비증강에 대해  4·27 판문점 선언의 단계적 군축(3조 2항)합의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북한도 심각하게 반발했습니다. 이것이 남북관계 파탄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아요. 기본적인 국방력이라는 토대 위에 평화를 얹혀야 되는 겁니다. 군비통제비서관의 첫 번째 임무는 군비를 점검하는 건데, 청와대에 들어가서 보니 보수정권에서는 오히려 군비를 줄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컨대 북한 정찰에 필수적인 정보감시정찰(ISR) 등과 같은 장비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ISR자산 확보를 위해 국방비를 늘렸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지리멸렬하게 됐습니다. 보수정부에서는 한미동맹을 강화해서 미국의 자산을 쓰면서 소위 힘자랑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체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또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북한만 바라보고 준비해서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2018년 9·19 군사합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찍어 내린 게 아니라 군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일부에서 제기하는 유엔사와 미국과 사전조율이 없었거나 부족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번 거꾸로 계산해 봅시다. 군사합의는 유엔사 동의 없이 이행할 수 없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에 감시초소(GP)를 철수하는 것도 유엔사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군사합의 관련 주요 행위자가 합동참모본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주한미군, 유엔사 등 7개 정도 되는데 이 행위자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이행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청와대가 ‘이렇게 하라’고 찍어 누르면 복종할 수는 있겠지만 이행은 안 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논의해서 결과를 가지고 오라고 한 겁니다. 보통은 군이 매파라서 전쟁과 폭력, 긴장을 먹고 사는 집단이라고 주장하지만, 9·19 군사합의 국면에서 군은 평화를 위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만약에 당시에 청와대가 찍어눌렀다면 군사합의 준비·논의 과정이 중간에 언론에 다 샜을 겁니다. 저도 학자로 이런저런 공부 했지만 언제 GP 내부에 들어가 봤겠습니까? 디테일한 부분은 필드에 계신 분들이 많이 알 수밖에 없습니다. 군의 협조 없이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습니다.
 
2018년 11월 15일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강원도 철원 지역 중부전선의 GP(감시초소)를 시범철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MZ 내 GP 전부 철수 북한 제안 거부, 솔직히 후회스러운 부분"
 
-책을 보면 9·19 군사합의에 대해 북한도 대단히 적극적으로 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의 인식과는 다른 대목인데, 북한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군사합의가 9·19 정상회담의 부속합의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속도를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정상회담 시일이 정해져 있으니 저희가 호스트인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9·19 남북군사합의가 9월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로 만들라는 전략지침을 받았는데, 북측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북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와서, 지나고 나니 ‘받을 걸 그랬다’고 후회되는 것도 있습니다. 북한은 GP 160여 개 전체를 다 철수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두 지도자가 큰 뜻을 가지고 하는 일에 양측 군도 도와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그런데 왜 안 받았습니까.
=우리 군이 급진적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합의문에도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는데, 우선 남북 각각 10개씩 시범 철수하고, 이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서 전면 철수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전면 철수가 중단됐습니다. 만약 전면 철수를 합의하고 이행했다면, 우리 사회의 보수 측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국내적 수용성도 감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후회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북한이 9·19 군사합의 이후, GP에 근무하던 1000여 명을 원산 갈마 지역의 해양관광지구 건설 현장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방의 경제현장으로 보낸 것인데요. 당시 북한의 경제적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용어가 문제라면 윤석열-바이든 워싱턴 선언은 왜 그렇게 썼을까"
 
-윤석열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용어를 '북한 비핵화'로 바꿨습니다.
=(웃음) 그게 그렇게 문제면, 지난 4월에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워싱턴선언에 왜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일본은 왜 ‘한반도 비핵화’라고 할까요?” 국제사회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합니다. 북한비핵화라고만 하면, 국제사회는 ‘그럼 남한은?’이라고 되물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 얼마면 비핵화할 수 있을까"라는 챕터가 있더군요. 제목을 직접 뽑았습니까. 
=제가 직접 뽑은 겁니다. 협상이라는 것은 상응 조치를 교환하는 것이지만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 상대 제안에 값어치를 쳐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가 북한 영변 핵 값이 가장 저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뻥 찼으니, 이제 얼마나 될까 하는 고민이 들어 이런 제목을 넣게 됐습니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은 "여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개성공단까지는 어려웠어도 금강산관광은 문재인정부가 눈 딱 감고 치고 나갔어야 한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용기가 부족했던 대목 아닐까요.
=(잠시 침묵) 동의합니다. 동의하는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싶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근본적인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에 있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북미 간 비핵화 문제 합의가 잘 되면 부차적인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봤던 겁니다. 제가 당시 평화기획비서관이었는데,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북한도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를 중심적으로 추진하길 원했습니다. 
 
한편으로 문재인정부가 가장 용기를 내서 만들었던 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였어요. 미국이 강하게 반발했는데도 우리가 제재체제와 상관없이 밀고 나간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북한이 2020년 6월에 폭파해 버리고 나니까, 미국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최종건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연세대학교 연희관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SNS에 소개하면서 ‘한계, 성찰’이라는 표현도 담았는데요, 문재인정부 통일외교안보정책의 한계와 성찰해야 할 대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죠. 북한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처럼 문화·경제적인 교류를 원할까요? 이를테면 북한은 묘목이 아니라 양묘장을 원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 인프라를 원하는데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예전에 했던 이벤트 사업들 정도입니다. 제재 때문에 양묘장에 들어가는 주요시설은 지원할 수 없습니다.
 
북은 이제 군사, 안보 분야에서 이른바 ‘근본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거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지원을 안 해줘서 실패했다는 그런 공식은 이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4년 후에 다시 민주 정부가 들어서도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해 나가는 점진적인 비핵화 과정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 목표를 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진정성(sincerity)이란 말은 국제정치학이나 외교정책 이론에서 다루지 않는 개념이다. 아무래도 북한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비도덕적이며 반인륜적인 주체로 바라보는 규범적 접근이 이 정치외교적 상황에다 '진정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원인이지 않나 생각한다"며 "정치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일반에서는 의도(intention)라는 개념을 더 중요한 분석단위로 다룬다"고 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진정성이나 선의, 얼마나 아마추어적인 용어입니까? 우리가 바보입니까? 핵심은 김 위원장이 한 행동과 정책을 가지고 협상 파트너로 신뢰할지 말지, 신뢰를 유지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노이 이전과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게 하고, 이를 변하지 않게 미국과 공조하여 비핵화 과정을 실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 하지도 않으면서 비핵화 의지가 거짓이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했던 그 노력을 왜 비난합니까? 대안이 있습니까?
 
대담·정리=황방열·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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