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초대석)"성범죄 대응, '피해자 보호'로 패러다임 바꿔야"
'여성아동범죄' 전문가 황은영 변호사 인터뷰
"국민 생각 달라졌다면, 국가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
"성범죄처벌법, 사건 터진 후 '임기응변'식 개정 문제"
"재범 위험 높은데 형 채웠다고 무방비 출소하게 둬서야"
"스토킹처벌, 범죄유형 구체화보다 '예방 강화'가 방향"
2022-11-01 06:00:00 2022-11-01 06:00:00
[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국민들이 성범죄 등 흉악범죄에 대해 이전과 다르게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다면, 당연히 국가는 그 범죄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롭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의 성범죄 재범률이 높다는 데이터를 갖고 있는 이상 재범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또한 다시 강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죠.“
 
'수원발발이' 박병화가 31일 출소했다. 빌라에 침입해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흉악범이다. 출소 후 생활 할 거주지가 하필 대학가 인근이다. 박병화가 선택한 경기 화성 시민들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법무부는 출소자의 주거결정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박병화에 앞서서는 미성년자 연쇄성폭행범 김근식이 출소할 뻔 하다가 검찰이 다른 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 가까스로 구속됐다.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잔혹 일변도'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박병화·김근식 못지 않게 '재범 위험성'이 강한 흉악범들의 출소는 앞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사회적 불안감은 더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황은영 변호사('황앤정' 법률사무소 대표)는 지금이 성범죄 등 흉악범죄자들에 대한 법적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를 비롯한 국민의 법감정을 입법·사법·행정부가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입법이 물꼬를 터야 하는데 임기응변식 법개정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전주환 사건'으로 다시 문제가 촉발된 스토킹범죄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도 황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 조치"라고 여러번 강조했다. 이 역시 피해자 보호 위주로 적극적인 사회안전망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더 큰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선 사전 단계에서 예방적 조치가 중요한데, 결국 이 단계에서 확실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스토킹처벌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황 변호사는 여성·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수사에 관한 한 국내 내로라 하는 전문가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검사·의정부지검 형사2부장 등을 거쳐 춘천지검에서 차장검사를 끝으로 변호사가 됐다. 박병화·김근식부터 전주환까지 최근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고 있는 여성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스토킹범죄에 대한 전반의 문제점을 함께 돌아봤다.
 
다음은 황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황은영 '황앤정'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수민 기자)
 
-재범 가능성이 높은 흉악 성범죄자들의 출소를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은 왜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고 보나.
 
"사실 형벌은 국가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개인의 자유, 재산 등을 거의 박탈하다시피 하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따라서 이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범죄로 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은 것만을 범죄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법체계가 감수해야 할 부담과 한계가 있기에 좋게 말하자면 사건 발생 후 처벌을 계속해서 강화하며 발달시켜 나가고 있다. 또 달리 표현하자면 사건이 터진 이후 임기응변식으로 법을 개정하고, 새로 입법하고 있는 것 같다."
 
-박병화 등의 출소를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치료감호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재범 위험성이 있음에도 형을 채웠다는 이유로 무방비로 출소하게 하는 것은 옳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국민들의 목소리에 공감한다. 중대범죄의 재범성을 줄이고, 가해자의 장애적인 위험성 해소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굉장히 강력한 제재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이러한 제도를 얼마만큼 조심스럽게 운영할지를 고민하는 것 또한 당연히 사회의 몫이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 측면에만 집중하다 보면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은 놓칠 수 있다.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제도가 남용되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남용될 것을 걱정하고 시행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 남용 방지를 위해 위해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엄격한 요건과 절차 규정이 병행돼야 한다."
 
-형기를 다 마치고 만기출소하는 흉악범과 이들의 사회 복귀를 거부하는 여론은 큰 틀에서 서로 모순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법도 어느 정도는 변화된 법의식과 국민들의 요구에 맞춰 운영돼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과거 성범죄는 대부분 친고죄로,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강간죄는 비친고죄이며 당연히 처벌해야 하는 범죄로 규정되는 등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봤을 때 국민들이 성범죄 등 흉악범죄에 대해 이전과 다르게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다면, 당연히 해당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또 성범죄의 재범률이 높다는 데이터를 갖고 있는 이상 재범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또한 다시 강구해야 할 때다."
 
-스토킹범죄의 경우 법 위반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꼈나.
 
"범죄는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스토킹 행위는 사전 범죄적인 성격이 강하고, 행위 자체가 모호하며 유형이 너무 다양해 범죄화하기 어렵다. 스토킹 범죄가 주는 예고적이고 상징적인 시그널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약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범죄로서 엄격히 형벌권 차원으로 접근하기에는 균형이 안 맞는다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가 느끼는 심각성과 위협감이 수사기관에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과 현장에서 수사기관이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큰 문제점이다."
 
-법 개정 포인트로 지목된 '반의사불벌' 조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막상 피해자에게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처벌하기를 주저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 유무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의도치 않게 피해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분화된 조치들을 마련해 국가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피해자가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조치가 이뤄지는 구조 자체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스토킹 범죄 신고가 들어오거나 상황을 인식했을 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어떤 조치 취해야 할지 등 다양한 방법을 국가가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마련해야 한다. 이는 스토킹 범죄가 더 큰 범죄로 넘어가기 전 대응 단계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최근 스토킹처벌법 개정의 흐름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겠다는 흐름에 적극 동의한다. 위험 행동을 감지하고 그 행위를 차단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처벌여부 의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스토킹 범죄의 중요성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 조치다. 스토킹은 중대 범죄 이전에 일어나는 사전적인 행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나타나는 그 행위만을 봤을 때는 범죄의 중대성을 감지하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 끝엔 결국 굉장한 침해 행위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스토킹 범죄가 위험하고 심각한 것이다.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전형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보여준 사례다." 
 
-그렇다면 추가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가
 
"어떤 행위 유형을 스토킹 범죄로 범주화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전 예방을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예방 조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느낄 불안감과 위협감에 중점을 맞춰 피해자 보호를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치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전자장치 부착 등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피해자 보호 그다음 고려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문가로서 제언하고 싶은 성범죄 근절 방안이 있다면
 
“스토킹 범죄를 포함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 중 하나는 이 범죄가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심각한 성적 침해 행위이며, 확실한 범죄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또한 이를 위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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