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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군을 망치는 확실한 방법
2024-05-02 06:00:00 2024-05-02 06:00:00
4월 말의 군 정기인사에서 유임이 확정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1986년에 해군사관학교에 44기로 입교한 인물이다. 박안수 육군 총장과 이영수 공군 총장, 양용모 해군 총장이 그해에 사관학교에 입교했으니 김 사령관은 이들과 기수 동기인 셈이다. 작년과 재작년에 윤석열 정부는 대장을 임기를 단축하여 전원 물갈이함으로써 각 군 총장이 젊은 기수로 채워지는 동안 유독 해병대만은 예외였다. 작년 11월의 군 정기인사에서 새로운 얼굴이 총장으로 임명되는 동안 김 사령관만 자리를 지키더니 당연히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올해 4월 말의 인사에서도 그는 유임이 결정되었다. 해병대 사령관만 2년 임기를 채운다는 해병대 예외주의는 왜 나온 것인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공수처가 채 해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시기에 김 사령관을 교체하기란 어려웠다고 보인다. 지난 4월 12일에 해병대에 전파된 김계환 사령관의 지휘서신은 “그동안 말하지 못할 고민이 많았다”며 사실상 퇴임을 준비하던 김 사령관을 정권은 내보낼 수 없었던 거다. 그가 퇴임한 이후에 그 ‘말하지 못할 고민’이 무엇인지 밝혀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 결과 동기생이 4성 장군인 상황에서 나 홀로 3성 장군으로 해병대의 수장 노릇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같은 해사 동기생인 해군 총장으로부터 지휘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김계환 사령관과 임성근 전 1사단장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니까 해병대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군 진급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른 군은 3성 장군으로 진출하고도 남은 해사 45기인 임성근 전 사단장은 2성 장군으로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해병대의 후배들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채 상병 수사에 대한 외압과 박정훈 대령에 대한 온갖 불이익으로 신뢰를 상실한 해병대 지휘부는 인사에서도 계속 부담을 주고 있으니 과연 해병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이는 마치 올림픽 진출이 좌절된 최근의 한국 축구를 보는 느낌이다. 그나마 축구 국가 대표팀은 감독이라도 교체라도 했지만 해병대는 당연히 나가야 할 장군들이 자리를 지킨다. 제주도에서 포항을 거쳐 백령도까지 배치된 해병 부대들마다 지휘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는 소문이 들린다.
 
작년 7월의 채 상병 사망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해병대의 지휘관이 자신의 위신을 세우느라고 부대원들을 들들 볶고 윽박지르며 불필요하게 통제한다는 점이다. 대민 지원을 나간 부대원들이 방송에 잘 나오게 하려고 사단장이 직접 나서서 복장 통일과 경례를 똑바로 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현장의 한 초급 간부가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말해도 “복장 통일”을 이유로 전투화가 아닌 장화를 모두 착용하도록 통제한 당사자가 바로 사단이었다. 전투화를 신건 장화를 신건 현장에 나가 있는 간부가 결정하면 될 일을 상부에서 왜 통제하는가. 군대가 평시에도 이렇게 운영된다면 과연 이길 수 있는 군대인지 의문이 든다. 그저 사단장 눈치만 보도록 매사에 군기를 잡는 군대가 무슨 창의력과 상상력이 있겠는가. 자율과 위임을 거부하고 통제 만능을 지향하는 무능한 지휘관이 왜 그렇게 공명심은 강한지, 언론보도에 극도로 집착하는 행태는 또 뭔가. 그러다가 사단장은 막상 참사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돌연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현장을 지휘한 지휘관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 돌리자는 의도다. 수사 외압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사 적체와 보신주의가 만연된 군의 정신문화가 바로 채 상병 죽음의 진짜 배후가 아닌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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