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먹잇감 전락한 '기술주권'…정부 강경대응 '미지수'
'한일 외교 성과'에…정부, 일본 정부·기업 눈치보기 '급급'
야권, 정부·여당 총력 대응 주문…국제법 대응 검토도 필요
2024-05-13 17:25:01 2024-05-13 18:07:45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이른바 '라인 사태'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기술 주권'입니다. 한국의 원천기술이 고스란히 일본으로 넘어갈 판인데도, 우리 정부는 지금껏 이를 개별 기업의 경영권 방어 문제로 인식하면서 사태를 키웠습니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가 촉발한 라인야후 사태는 사실상 한국의 기술주권 침탈 행위이지만,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기업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게 문제인데요. 특히 우리 정부가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인 한·일 관계 악화 우려로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범야권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정부의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 늑장 대응 사이…'반일 감정' 싸움으로 불똥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라인야후 사태는 네이버가 지분 매각 협상을 공식화하면서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경제·안보 시대를 맞아 외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민간 기업 차원의 사안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면 정부가 기술주권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라인야후 사태가 정치권 갈등으로까지 번지며 연일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급기야 '반일 정서' 논란 등 한·일전 양상으로 확대되는 모습인데요. 민주당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을 열고 굴종외교 논란과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즉각 범정부 총력 대응으로 우리 기업을 지켜야 하고, 국민의힘도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책 마련에 협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같은 당 서영교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강펀치'를 얻어맞고도 가만히 있는데, 과연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며 "후쿠시마 발전소 오염수 방류도 다 수용하는 정부에 대해 조선총독부냐는 비판까지 제기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조국혁신당도 이날 조국 대표가 독도를 찾아 대일 외교 비판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습니다. 또 구글 출신인 이해민 당선인과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당선인 등 조국혁신당 당선인들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판교를 찾아 정부의 이번 사태 대응을 비판하는 '매국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일 감정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이 애매한 얘기를 할 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부가 나서서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을 겨냥해 "라인야후 사태가 제2의 죽창가가 돼선 안 된다"며 "하루빨리 민간, 여·야 국회 및 정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한·일 양국이 공동조사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제통상 질서 교란 불가피…"ISDS까지 검토해야"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라인야후 사태에 대해 기술주권 차원에서 접근하며 라인야후측의 지분 매각을 막기 위한 국제법적 대응 조치 검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IT 전문가이기도 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틱톡을 두고 데이터 영토전쟁을 하고 있듯이, 네이버 야후 사태도 기술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정부는 한·일 투자협정(BIT)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최악의 경우 네이버에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S) 카드 또한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해외진출기업보호법' 또는 '최대주주보호법' 등을 만들어서 우리 산업을 보호하거나 사후보복을 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라인야후 사태에서 명목상 문제가 비화된 것이 네이버의 정보 유출 사태인 만큼, 비슷한 사안을 찾아 오목조목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한·일 문제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국제통상 질서를 교란시키는 국제사회에서의 문제라고 확대해서 판단해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공식 의견을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우리 정부가 우리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무엇보다 우리 국민과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고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과 사업 유지를 하겠다는 입장일 경우 적절한 정보보안 강화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고 이를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며 "네이버가 자본구조 변경 이외에 정보보안 강화에 필요한 정부 차원의 조치와 모든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9일 오후 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테라스기오이타워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걸어가는 사람 앞으로 '라인야후'라고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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