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텔레그램 딜레마
2024-09-05 06:00:00 2024-09-05 06:00:00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범죄 영상물 확산 사태로 인해 주요 유통 창구인 텔레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송신 메시지의 암호화와 대화방 폭파(폐쇄) 기능 등 강력한 보안 정책 속 은밀한 범죄의 유통 온상으로 재조명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의 파벨 두로프가 지난 2013년 러시아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보안성을 최우선으로 개발한 메신저앱입니다. 뛰어난 보안성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박근혜정부발 사이버 검열 논란이 불거질 때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에 나서는 등 인기를 끌었는데요. 외산 메신저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사정당국의 압수수색 등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부각됐습니다.
 
이후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가 필요할 경우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의 대명사로 떠올랐는데요. 국내 정치권, 기업 임원 등 고위 인물들도 텔레그램을 주요 소통 창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과거 파장을 낳았던 윤석열 대통령의 체리따봉도 텔레그램을 활용한 소통 사례입니다.
 
미얀마, 이란 등 해외에서는 민주화 운동 속 시위대의 피난처로 각광 받기도 했는데요. 반면,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들도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주로 애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디지털 성범죄와 마약 등 범죄 유통의 온상으로 텔레그램이 쓰였는데요. n번방, 박사방 등 성착취물 유통으로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이러한 이름 또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기인합니다.
 
결국 범죄자들의 애용으로 인해 텔레그램에 부정적 이미지만 덧씌워진 셈이 됐는데요. 기술 발전의 양면성처럼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문제지, 정작 텔레그램에는 죄가 없습니다. 다만, n번방과 최근의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처럼 범죄의 창구로 사용됨에도 대책 마련과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 법인은 지탄을 받아야 합니다. 이용자를 그러모아 수익을 꾀하는 만큼 보호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딥페이크 확산 방지와 대응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 또한 딜레마에 놓였습니다. 경찰이 처음으로 법인을 수사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지만, 그간의 비협조 상황을 감안하면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시정 요구도, 과징금 부과도 쉽지 않은 데다,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텔레그램이 철수해 버리면 이용자들의 비판도 정부가 오롯이 져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습입니다. 앞서 글로벌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도 망 사용료 부담을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미 n번방 사태를 경험했음에도 바꾸지 못했던 현실은 디지털 성범죄의 재발로 이어진 셈이 됐기 때문입니다. 제도적 허점을 즉각 개선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합니다. 최근 텔레그램 측이 우리 정부에 사과와 신뢰 회복 의지를 밝힌 점은 다소 고무적인데요. 이번 사태를 확실히 해소해 더 이상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IT 강국의 부끄러운 현실이 부각되지 않아야 합니다.
 
배덕훈 테크지식산업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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