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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이냐 탈환이냐..PK가 총·대선 가른다
(미리 보는 격전지 ①)부산광역시·경상남도
2012-01-16 11:13:56 2012-01-16 11:13:58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선거의 해다.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가 한 해에 치러진다. 2007년 대선이 이듬해 총선 운명을 갈랐듯 2012년 정국은 4월 총선이 12월 대선의 명운을 가를 것이란 데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그 중심에 부산·경남(PK)이 자리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있다고는 하나 민심의 무게추가 여야 어느 한 쪽으로 기운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에겐 실망과 배신의 분노가, 민주통합당에겐 여전한 정서적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게 지역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러기에 여야 모두 두렵다. 두려움은 단순한 성패에서 그치질 않는다.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의 정치적 명운이 함께 걸려 있다. 이는 곧 대선 구도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한국정치 지형도 또한 다시 쓰일 수 있다. 수성과 탈환을 놓고 박풍(박근혜)과 노풍(노무현)이 정면대결에 나선 이유다.
 
◇박근혜, 영남 수성 관건..PK 내줄 경우 TK 고립
 
변화의 기류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됐다. 당시 김정길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분투 끝에 허남식 시장의 3선을 허용했다. 그러나 44%의 득표율은 한나라당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이웃 경남에선 야권단일주자로 나선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이 연출됐다. 공고했던 지역 패권주의에 본격적 균열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다 저축은행 사태, 동남권 신공항 무산, 한진중공업 사태 등 지역 악재가 겹치면서 민심은 집권여당이자 지역 터줏대감인 한나라당을 향한 분노로 들끓었다.
 
현 한나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유기준 의원은 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연이은 악재에 중장기적으로 민심이 나빠졌다”면서 2004년 탄핵 정국을 예시했다. 그는 “당시엔 너무나도 큰 충격에 급속도로 민심이 악화됐다면 지금은 상처의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같은 당의 김정훈 의원은 “그런데다 당이 (돈봉투 논란, 재창당 등을 놓고) 서로 총질만 해대고 있으니.. 도대체 답이 없다”며 혀를 찼다.
 
당 고위관계자는 “해법은 인적쇄신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세연 의원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공천을 장담해선 안 된다. 기존 정치인, 기존 한나라당 색채로는 백전백패”라며 “갈아엎는다는 각오의 물갈이를 통해 참신한 인물을 내세우고 박 위원장이 전면에서 지원할 때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물대결을 피하고 구도를 단순화시켜 박 위원장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역 언론 관계자들 역시 “반한나라, 반MB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면서도 “특이한 점은 박근혜에겐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 박근혜’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리면서 그어온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노선이 현 정부 실정에 대한 반대급부를 박 위원장이 취하게끔 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MB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민주통합당에 대한 정서적 장벽도 한 몫 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대권이 종착지인 박 위원장으로선 영남권 수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대선으로 이어질 변화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전력을 PK에 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PK에서 공간을 내줄 경우 텃밭조차 지키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며 “이는 박 위원장에게 대선은 끝났다는 사망선고와도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한나라당은 기존 대선에서는 지역구도에 힘입어 손쉽게 승리했다. 유권자 대비 호남·충청·강원에 비례하는 영남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절대적 약세로 밀리지만 않을 경우 정권 창출은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게 한나라당 의원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주요 광역거점(인천·충남북·강원 등)을 민주당에게 내줬을 뿐만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아성(경남)마저 빼앗겼다. 여기에다 지난해 10.26 재보선에서 서울마저 야권에 내준 상황이라 PK를 수성치 못하면 TK(대구·경북)로 고립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고음마저 켜졌다.
 
특히 이들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지역으로는 수도권, 계층별로는 중산층, 세대별로는 2040세대의 심판적 성격이 뚜렷해 일단 안방을 사수한 후 외연을 넓혀나갈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박 위원장은 당 내홍을 수습하는 대로 총선체제로 전환하면서 자연스레 PK에 모든 힘을 쏟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한 지난 10.26 동구청장 선거에서 나타났듯 박근혜의 위력은 지역 내에서 여전하기 때문에 영남의 안정화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도 내재해 있다.
 
◇친노 대망론, 부산 성적표에 달렸다
 
반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위시한 친노 진영은 PK 혈투를 통해 대망론을 본격화할 태세다. 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신임 당대표로,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가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하며 전기를 마련했다.
 
친노 진영에겐 성지와도 같은 김해(김경수)로부터 출발해 양산(송인배)을 거쳐 북·강서(문성근), 사상(문재인), 사하(조경태·최인호)로 이어지는 이른바 낙동강 벨트의 성패가 관건이다. 낙동강 벨트의 안착은 도심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부산 전체를 휘감을 수도 있다. 도심엔 김정길 전 장관과 김영춘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버티고 섰다.
 
최인호 민주통합당 부산시당위원장은 기자에게 “일단 5~6석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했다”며 “바람이 일 경우 과반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41석 가운데 10석은 넘을 것”이라며 “잘 하면 15석까지도 가능하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이어 “부산 18개 (지역구) 중 5~6석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최 위원장과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이 경우 영남주자론이 본격화되면서 문 이사장의 대망론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친노 진영에선 이미 문 이사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PK 성적에 사활을 걸 움직임이다. 문 이사장 또한 총선 출마를 결심하면서 대선 또한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통합당의 유일한 지역 현역인 조경태 의원은 “반한나라당 정서가 분명 있지만 그것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뿌리가 없는 나무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바람에 의존하는 선거는 더 큰 바람에 쉽게 휘둘리는 법”이라며 “바람에 의존하지 말고 지역에서 밀착해서 유권자들과 호흡하는 것만이 정도이자 최선”이라고 말했다. 또 “박근혜의 위력은 여전하다”며 “녹록치 않다. 장밋빛 전망만으로 총선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문 이사장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그만의 승리로 그칠 경우 대망론은 급격히 수그러질 가능성 또한 크다. 패배는 단연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임에 틀림없다. 이는 또 다른 대안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견해가 제기되는 이유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이미 지난해에 “차기 대선은 박근혜와 김두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 또한 “안철수·문재인·손학규·김두관, 네 명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군”이라며 “부산 총선 성적표가 문 이사장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고, (총선결과를 통해) 지역 영향력을 확고히 증명하지 못할 경우 김 지사가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당선되면서 PK 영향력을 검증받았다는 게 무엇보다 큰 강점이다. 여기에다 마을이장에서부터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장관에까지 오른 스토리가 대중과의 동질감을 낳을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오랜 정당정치 경험과 숱한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검증됐다는 점도 문 이사장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무기로 꼽힌다.
 
총선 이후 움직임을 본격화할 그는 최근 “민주진보진영 대선 승리를 위해 (저에게) 나서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다”며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 지사는 특히 “선거전략 관점에서 보면 민주진보진영의 대선후보가 비호남 후보로 규정되는 측면이 있다”며 “문 이사장과 제게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비호남 후보에 대해 “영남후보, 다시 좁히면 PK 후보”라고 규정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항쟁이 말해주듯 PK는 역사적으로 TK(대구·경북)와 구별되는 전통적 야도(野都)였다. 민주화 진영의 한 축이었던 YS(김영삼)의 90년 3당 합당으로 지역 맹주를 쫓아 급격히 보수로 전환한 PK가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을 경우 차기 대선 구도는 물론 한국 정치 지형도의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곡점이 될 전장(戰場)이 바로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PK 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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