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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블로그)작전명 : 공무원을 수송하라
2013-03-13 18:03:08 2013-03-13 18:05:32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지난 11일부터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ey Resolve)가 시작됐습니다. 미국군이 한반도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절차를 연습하는 훈련입니다.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선 세종시에서도 대규모 인원 수송이 한창입니다. 훈련도 아니고 실전입니다. 하루에 두 번, 주말을 빼고 매일같이 말입니다. 수송인원은 바로 서울에서 세종시로 통근하는 공무원들입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세종시 출퇴근 작전쯤 되겠습니다.
 
세종시에 집을 마련한 공무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매일 서울에서 세종시로 출퇴근을 합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서울이나 경기지역에서 세종시로 통근하는 공무원들을 약 2500명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기관의 공무원이 약 5500명 정도니까 절반 정도인 셈입니다.
 
 
이들이 세종시로 통근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통근버스를 타고 정부세종청사로 가는 것입니다. 버스는 행정안전부에서 45인승 관광버스 50대를 대절해 마련한 것으로 신도림, 사당, 일산 등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이른 새벽부터 대기하고 있습니다.
 
출근버스 출발은 오전 6시30분, 퇴근버스 출발은 오후 6시30분입니다. 통근 시간은 2시간 남짓입니다.
 
출퇴근 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정해진 시간에 공짜로 세종시까지 데려다준 다는 점입니다. 버스를 타려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쳐야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은 쪽잠이라도 잘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좁은 관광버스에서 발도 제대로 못 펴고 잠을 자다보니 세종시에 도착할 때쯤이면 어깨와 목이 뻐근해집니다. 아직 업무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았다가 퇴근할 때보다 몸이 더 쑤십니다.
 
몸만 힘든 건 그래도 견딜 만하겠지만 아침부터 잠을 설쳐 온 몸이 결리니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출퇴근 버스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목베게입니다.
 
출퇴근 버스의 가장 큰 단점은 따로 있습니다. 악천후 때면 버스가 제 속도를 못내 늦어진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봄비가 평소보다 조금 많이 내린 날에는 버스가 예정시간을 20분이나 넘겨 세종청사에 도착했습니다.
 
9시에 가까워서야 도착한 버스 덕에 그날 공무원은 뛰어서 청사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러다가 눈이라도 와서 빙판길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자체 휴무일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울에서 세종까지 가는 또 다른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까지 간 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세종청사로 들어가는 노선입니다.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 KTX를 타고 가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오송역에서 버스를 타면 세종청사까지는 20분. 출퇴근 버스로는 2시간 가는 거리를 무려 40분이나 단축한 셈이니 얼마나 빠릅니까.
 
그런데 여기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비용이 많이 듭니다.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 KTX비는 편도 1만7200원으로 왕복이면 3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오송역에서 세종청사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무료라서 추가비용이 없지만 하루에 차비로 꼬박꼬박 3만원 넘게 나가는 것은 공무원들 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굳이 단점을 더 꼽자면 한번 타면 2시간을 쭉 가는 출퇴근 버스와 달리 KTX로 가게 되면 버스로 갈아타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KTX 좌석은 관광버스만큼이나 좁고 불편해 무려 2만원에 가까운 가격 프리미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그나마 출퇴근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치는 수고를 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KTX로 출퇴근할 때 생기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KTX로 서울에서 오송역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1시간이 채 안됩니다. 분명 빠르기는 하지만 딱히 뭘 하기에 어정쩡한 시간입니다. 잠을 자려니 깊이 잠들기도 뭣하고 어설프게 자기도 애매합니다. 잠을 안자고 뭐라도 할라치면 금방 목적지에 도착해버립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A과장은 최근 KTX를 타고 출근하다가 큰일을 치렀습니다. 출발하면서 깜빡 졸았는데 눈을 떠보니 역에 도착했더랍니다. 벌써 오송역인가 싶어서 봤는데 아뿔싸, 오송역을 지나쳐 대전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A과장은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출근시간에 맞춰 세종청사까지 갔지만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덜컥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국토해양부는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했습니다. 오송역 외에도 세종시에 KTX역을 신설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KTX 세종역이 들어선다면 출퇴근하는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편해지겠지만, 이들을 위해 수백억을 들여 새 역을 짓는 게 과연 필요한지는 의문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요즘 공무원들 사이에서 새롭게 뜨고 있는 방법입니다. 바로 카 셰어링(Car Sharing)입니다. 카 셰어링은 카풀이나 렌트카와 달리 한 대의 차를 공동이 소유하는 것처럼 서로 적당히 사용시간을 나눠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국토해양부가 공무원들의 이동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카 셰어링은 지난 2월 말부터 세종청사를 비롯해 오송역과 첫마을 등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아반떼와 SM3 등 총 10대가 운행 중인데, 30분 혹은 1시간 단위로 차를 쓸수 있습니다.
 
카 셰어링을 이용하기 위한 비용도 개인당 4980원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이걸로 통근문제를 해결하는 공무원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카 셰어링의 장점은 원하는 시간대에 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버스나 기차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하긴 합니다만 직접 운전을 해야 하니 이동하면서 쉬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동료 공무원들과 말동무도 하면서 드라이브 한다면 그 정도는 참을만 하다는게 대부분의 평가입니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이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 등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기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출퇴근 실태를 조사한 것입니다.
 
조사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세종청사로 이전한 부처의 공무원 중 45%가 서울·경기 등에 거주하며 세종시까지 출퇴근 한다고 합니다. 평균 통근시간은 244.4분으로 무려 4시간을 훌쩍 넘습니다.
 
서울에서 과천정부청사까지 출퇴근 하던 시간이 평균 66분 정도였으니 지금은 그 4배를 훌쩍 넘기게 됐습니다.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물리적인 거리도 멀지만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요즘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매일같이 충청도로 여행갔다 온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입니다.
 
공무원을 두고 국민의 공복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는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출퇴근에만 4시간을 쏟고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들이 로봇이 아닌 이상 매일같이 이렇게 한다면 체력도 떨어지고 업무 집중도도 흐려지겠지요.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작전명을 시급히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공무원을 지켜라." 맘에 들지 않으시면 이런 작전명은 어떤가요. "국회를 세종시로!" 국회의원을 제외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전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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