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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현대차 ‘성공신화’에 가려진 비정규직의 ‘눈물’
2013-04-19 09:58:10 2013-04-19 10:00:38
[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아마 저는 평생 엄마를 찾아 헤맸나 봅니다.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고요.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가 없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건 누구나 평등해도 사는 일은 그렇지 않았는데, 다행인 건 누구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네요.”
 
지난 1월2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아차 사내하청업체 직원 윤씨의 마지막 절규다.
 
고아였던 그는 기아차 사내하청업체에서 해고된 직후 극심한 생활고와 우울증, 스트레스 등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지난 4월14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촉탁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1월 해고된 또 다른 노동자가 목을 매 자살했다.
 
불과 이틀 뒤인 16일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카렌스와 쏘울을 만들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다.
 
 
무엇이 이들을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았을까.
 
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각각 1만3000명과 5000명.
 
이들은 지난 10년간 현대·기아차 ‘성공신화’의 숨은 일꾼으로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정몽구 회장의 재산은 2003년 6800억원에서 지난해 6조9600억원으로 10배가 넘게 늘었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0년 현대·기아차는 외형 성장에 치중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사내 비정규직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희생만을 강요했다.
 
최근 연이어 터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자살은 이미 곪을 대로 곪은 현대·기아차의 비정규직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 마지막 몸부림이란 게 노동계 중론이다.
 
더 슬픈 건 이조차도 이해하고,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 17일 오후 1시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를 비롯해 노동, 시민단체가 함께 작은 집회 하나를 열었다. 
 
정문 앞 도로. 집회 참가자들은 눈물과 절규로 비정규직 철회를 외쳤지만, 이들의 절박함을 위로해주는 건 흩날리는 벚꽃 뿐이었다.
 
기아차 광주공장 한 노동자는 “죽은 동지들을 돕지 못한 지금 흘리는 눈물은 사치일 뿐”이라며 연신 자책한 뒤 “사내하청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가 공론화돼 억울한 사람이 없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로 시대과제로 등장한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정도로 후퇴했다. 정부와 국회가 압박수단을 총동원해야 기껏 투자 증액이나 일감 몰아주기 근절 자구책을 내놓을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양극화 심화의 주범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이 그렇게도 외쳐댔던 경제민주화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정부는 기댈 곳 없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 대법원까지 나서 불법파견이란 확정판결을 내놓았음에도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배짱인 셈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에 오르고 스스로 목을 매는 처참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포괄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현대·기아차는 이 과정에서 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반성은 그 첫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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