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잦은 야구장 전광판..해결책은 없나
2013-10-04 14:24:22 2013-10-04 14:28:09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1. 지난 8월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야구장. 당초 6시 30분 시작되야 할 프로야구 두산-NC 경기가 8분 지난 6시 38분에서야 시작됐다. 홈 플레이트 뒤 볼카운트 전광판 불이 모두 켜지는 이상 징후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NC의 선발 찰리가 이를 발견해 심판진에 어필했고, 결국 경기는 예정됐던 시각에 비해 약 8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볼카운트 전광판을 꺼둔 채로.
 
#2. 9월 3일 오후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롯데-넥센 경기에서는 경기 6회말부터 장내 아나운서가 육성으로 볼카운트를 안내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이내 장내 아나운서는 투수가 공을 한 개 던질 때마다 볼카운트를 알렸다. 전광판 기능 일부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이닝별 점수와 양팀 선발 라인업 등은 정상 작동했지만, 중앙 화면과 볼카운트 부분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부분 고장이었다.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는 숨막히는 승부의 순간에 외부적 요소로 인해 대결이 중단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크게 찌푸리게 한다. 아쉬움과 허탈함을 넘어 경기 흐름이 바뀌기도 하기에 해당 팬들의 경우 억울한 마음까지 생기곤 한다. 
 
그렇지만 최근 3년간 국내 프로야구에선 구장 시설로 인한 경기중단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잊을만 하면 다시 일어났고 그때마다 많은 비판 여론과 후속 해결책이 쏟아졌지만 공염불에 그칠 뿐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벌써 네 차례 경기중단 사태가 나왔다. 경기가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고장난 전광판을 임시처방한 사례도 있다. 사고 장소도 무척 다양하지만 원인마저 제각각이다. 국내 야구장 인프라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지난 한 해를 정리하는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는 시점에 전광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결코 야구팬과 관계자 등의 과잉반응이 아닌 것이다.
 
◇2011~2013년 야구장 전광판·조명탑 관련 사고 일지.
 
◇시설때문에 경기력에 영향 줘서야
 
옛말에 좋은 목수라면 자신이 다루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도 사람인 데다, 당일의 컨디션 또한 적잖게 중요하다. 작은 변화에도 무척 민감하다.
 
안타나 득점 등의 찬스가 이어지는 '좋은 흐름'은 끊어지지 않을 수록 좋고, 투수의 경우 오랜 휴식은 결코 투구에 좋지 않다. 그렇기에 공수교대 외에 예상하지 못한 돌발 사고 사유로 경기가 중단될 경우에는 이기던 팀에게 손해가 적지 않다.
 
하루에 두 번 야구장 조명탑이 말썽을 부린 지난해 7월 19일의 목동 경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클리닝타임은 무려 10분에 달했다. 구장 3루 뒷편 조명탑 내 조명 중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무난한 투구를 펼치던 넥센의 선발 나이트는 2-2로 맞선 6회초 실점했다. 지나치게 긴 클리닝타임이 투수 컨디션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날 조명탑은 원정팀인 롯데에게도 공평하게(?) 불리했다. 1루쪽 조명탑도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넥센의 1사 2루 찬스에 맞춰 조명이 고장나 결국 경기가 7분동안 중단됐다. 끝내 롯데 불펜 투수인 이명우는 연속 적시타를 맞았고 이날 롯데는 경기를 날렸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이같은 상황이 포스트시즌 경기 도중에도 발생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네 구단의 홈 구장이 모두 전광판과 조명탑의 문제 때문에 경기 진행이 중단된 경험이 있는 곳이며, 특히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의 대구야구장은 가장 낡고 열악한 곳으로 첫손에 꼽히는 구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스파크 중앙전광판. 좋은 전광판은 현장의 관중들에게 다양한 경기정보를 신속히 전달하고, 구단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사진=이준혁 기자)
 
◇첨단 전광판도 있다..하지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대전구장의 리모델링을 실시하면서 10억원을 투입해 미국 회사의 신형 외야 전광판을 들여왔다. 현재 대전시 소유 구장에 자신들이 쓸 전광판을 직접 구입해 기부채납한 것이다.
 
최태식 한화 이글스 야구장관리사무소장은 "가로 15m 규모 제품으로 크기 차이는 없지만 구현 기능에선 국내 제품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며 "화질은 HD급이라 월등히 좋고 전광판에 구현 가능한 콘텐츠도 상당히 많다. 컴퓨터 하나로 중앙에서 제어 가능하며,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장 중 28곳에서 쓰는 제품이라 검증도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기점검차 서울에서 인력이 수시로 내려와 살펴본다. 게다가 AS(애프터서비스)가 인터넷 원격으로 모두 가능하다. 외국 제품이라 AS가 어렵다는 식의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대전의 사례를 비추어볼때 , 다른 구장들도 첨단 전광판으로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손쉬운 작업이 아니라는데 고민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 A씨는 "담당자로 일하는 기간동안 한번도 경험을 못할 수 있는 구매다. 또한 야구장 시설은 언제나 사람의 관심이 많다"며 "과거 전례를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새로 시도해 잘못되는 것보다 낫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현재 새로운 야구장을 짓거나 기존 야구장의 보수를 꾀하고 있는 지자체의 업무 담당자 다수가 경기장 내 시설의 구매업무 경험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과거 입찰을 참고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부산 사직야구장 중앙 전광판. 현재 이 전광판은 메인 컨트롤러(전광판 운영 컴퓨터에 기록된 내용을 화면에 표출하는 장치)가 습기에 부식되면서 하단부 글자가 표시되지 않는다. 롯데 자이언츠는 글자 크기를 축소해서 전광판 중상부 이상에 내용을 모았지만 글자가 깨져 관중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변화를 꺼리는' 지자체들의 입찰 제도상 문제
 
15년간의 대형 건설회사 근무 경력을 가진 윤석준 NC다이노스 건설관리팀장은 현 스포츠 인프라 제품 입찰에 대해 문제가 적잖다고 꼬집는다. 
 
윤 팀장은 "야구장 시설의 공사와 다르게 음향기기·전광판·조명탑은 '제품 구입'이라 건설 입찰과 분명 차이가 있다. 게다가 구매가도 만만치 않다"면서 "더군다나 체육 경기장 시설 제품 구입은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다. 구매 경험이 적거나 없는 상황이기에 위험을 두려워하고 문제 상황을 꺼리는 다수 공무원이 과거에 진행한 입찰을 참고한다. 구형 제품 사용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구매 입찰 내역서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차이는 미미하다. 그리고 특정 회사의 제품만 맞는 스펙이 들어간 경우가 적잖다. '색 온도는 몇 도까지'라고 하면 한 회사의 제품만 그 온도 기준치를 적용할 수 있어 그 업체만 응찰하는 것이 한 예"라며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전에는 로비를 대행하는 전문 브로커가 많았다. 당시 작성된 내역서에 기재된 제품 스펙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중소기업제품 구매의무가 더해지며 저질의 제품을 사게 되는 것"이라고 현행 스포츠 인프라 입찰 제도의 문제에 대해 밝혔다.
 
한 구단의 구장관리 담당자 B씨는 "관중석이 적은 연습구장 외의 야구장은 법적으로 개인과 법인이 소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자체가 짓고 소유하는데 관련 담당자는 상당히 안전지향적이다. 새로 나온 제품이 기능이 월등히 좋은 것은 물론 가격이 비슷해도 구매를 무척 꺼린다"며 "그래서 썼던 제품만 계속 쓰게 된다. 현 분위기에서는 새 제품의 구입이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다"고 말했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코시엔은 시설 고장으로 경기가 중단된 사례가 손꼽을 정도다. (사진=이준혁 기자)
 
◇결국 피해는 야구 팬과 선수에게
 
야구장의 시설 오작동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전광판과 조명탑 등이 낡아 사고가 생긴 때도 있지만, 관리조정하는 소프트웨어가 고장 사유인 경우도 있고, 변압기 등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던 때도 있다. 그야말로 야구장 인프라의 총체적인 문제인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구장의 소유와 관리 책임이 모두 지자체에 있는만큼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구장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구단이 입찰 과정에 참여해 책임있는 구매와 설치가 이뤄지게 도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다른 구단의 구장관리 담당자 C씨는 "비수도권 한 야구장은 전광판이 고장났지만 지자체가 보수 관련 예산이 없다며 고장 몇달째 교체는 커녕 수리를 피하고 있다"며 "그래도 한화는 통 크게 홈구장 전광판에 돈을 썼지만 사실 대부분의 구단은 그러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구장은 지자체 소유이고 우리는 비용을 내고 쓰는 세입자 신세다. 우리 맘대로 고치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 보수의 책임은 본래 각 지자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 D씨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프로 스포츠 경기가 치러지는 경기장의 시설을 구축할 때면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작은 사고가 나더라도 언론이 지적이라도 하면 책임지게될 상황이 찾아오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과거 사례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자체가 함부로 외국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실상을 밝혔다.
 
연간 관중수 800만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야구장 시설은 한국 프로야구의 또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관중도 짜증나고 멋진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 선수들과 구단도 마음이 답답하다.
 
대다수 팬들은 "시는 야구장 사용료만 꼬박꼬박 챙겨갈 것이 아니라 시설 개선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아침에 보완하고 개선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을 '유권자'인 많은 야구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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